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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도로에서도 과속 단속, 5년새 사망자 44% 뚝

입력 | 2016-12-13 03:00:00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21>교통선진국을 가다
사망자 한국 4분의1 수준 노르웨이




《 지난해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4621명. 동아일보 교통안전캠페인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는 5년간 이 숫자를 절반 가까이 낮추는 것이 목표다. 전문가들은 ‘솔직히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이뤄 낸 나라가 있다. 북유럽의 강소국 노르웨이다. 2010년 210명이던 노르웨이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117명으로 44%나 줄었다.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는 22.8명으로 한국(89.7명)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르웨이의 비결을 살펴봤다. 》


○ 허를 찌르는 강력한 단속


 

지난달 21일 노르웨이 베스트폴 주의 한 도로에서 잠복 중인 경찰이 과속 차량을 적발하고 있다(큰 사진). 노르웨이 경찰은 암행 차량에 설치된 자동 번호판 인식 장치(ANPR)를 통해 차량 정기 검사를 받지 않았거나 번호판을 복제한 불법 운전자들을 적발한다. 베스트폴=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달 21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남쪽으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베스트폴 주(州) 레 시(市).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지나자 제한속도 시속 60km인 왕복 2차로 직선 도로가 나타났다. 도로 옆 울창한 나무숲 사이에서 경찰이 스피드건을 겨누며 잠복 중이었다. 인적이 드물고 차량도 많지 않은 도로에서 왜 과속 단속을 하는지 궁금했다. 닐스 순뵈 베스트폴 교통경찰국장(57)은 “곡선도로를 빠져나온 운전자들이 과속을 자주 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속도로나 차량 주행이 많은 구간에서 주로 무인 카메라 단속에 의존하는 한국과 달랐다.

 범칙금은 한국의 10배를 넘었다. 이날 시속 75km로 달리다 적발된 40대 남성은 범칙금 2900크로네(약 40만 원)를 부과받았다. 이 도로에서 시속 80km를 넘기면 6500크로네(약 90만 원)를 내야 한다. 순뵈 국장은 “단속의 목적은 단순히 위반 차량을 적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과속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운전자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peed kills you.(속도가 당신을 죽일 수 있어요.)” 이날 오슬로 도심에서 기자를 태운 택시 운전사는 “왜 이렇게 천천히 달리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운전자들은 텅 빈 도로에서도 시속 50km를 거의 넘기지 않았다. 운전사는 “오슬로 시내에서는 눈을 감고 걸어 다녀도 절대 교통사고가 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며 웃었다.

 경찰의 강력한 단속과 운전자들의 과속 근절 노력은 보행 사망자 감소로 이어졌다. 2010년 24명이던 보행 사망자는 2014년 18명, 지난해엔 12명으로 급감했다. 루나르 카를센 노르웨이 교통경찰국장(57)은 “모든 차량은 시동을 거는 순간 전조등이 켜진다”며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를 발견할 수 있어 사고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 어린이 사망자 1명의 기적

 

보행자 안전이 강화되자 어린이 교통사고도 줄었다. 어린이 교통사고 지표는 그 나라 교통안전 수준의 가늠자다. 교통사고 취약 계층을 어떻게 보호하는지 보면 도로가 얼마나 안전한지 알 수 있다.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9세 이하 어린이는 단 1명. 눈이 쌓인 언덕에서 미끄러져 도로로 튕겨져 나왔다가 지나던 트럭과 충돌한 사고다. 가해자가 운전자였을 뿐 엄밀하게 따지면 보행이나 차량 탑승 중 발생한 교통사고는 아니었다. 노르웨이 교통안전협회 안카트린 아뢰엔 대변인(43)은 “노르웨이는 1970년대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가 연간 100여 명에 달했다. 이후 카시트 착용률을 높이고 통학로를 차로와 분리시키는 정책으로 사망자를 크게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극장 앞에선 노란색 야광 조끼를 입은 어린이 10여 명이 보호자의 인솔 아래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부츠와 바지, 소매에 야광 스티커가 부착된 덕분에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운전자들은 횡단보도에서 멀찌감치 차량을 세운 채 아이들이 완전히 길을 건널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도로시설 바꾸니 정면충돌 66% 감소

 산악 지형이 많은 노르웨이는 좁고 굽은 도로가 많다. 보행로를 확보하느라 차로를 좁히는 대신 중앙선을 없앴다. 2010년 전체 사망자(210명)의 41%(86명)가 정면충돌 사고로 숨진 이유다. 특히 순간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의 피해가 컸다. 사망자의 30% 이상이 65세 이상이었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노르웨이 교통 당국은 사고 잦은 구간을 집중 관리했다. 도로 중앙에 요철이나 분리대를 설치해 차량 이탈을 막았다. 그러자 정면충돌 사고 사망자는 2014년 56명, 지난해 29명으로 크게 줄었다.

 환경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운전면허 교육 과정에는 야간 주행을 필수 코스로 했다. 밤이 긴 노르웨이의 기후를 고려해서다. 빙판길 사고를 대비해 도로 위에 기름을 뿌려 놓고 미끄러짐 현상도 체험하게 한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각 나라의 도로 특성과 환경 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사망자를 줄이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며 “한국도 지역 특성을 고려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슬로=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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