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식사는 개인적 휴식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이다. 올해 방영된 일본 드라마 ‘그라메: 총리 요리사’는 총리 관저에서 일하는 25세 여성 요리사를 통해 식사정치의 묘미를 보여준다. 총리는 복잡한 현안이 걸려 있는 껄끄러운 상대를 관저로 초청해 음식에 숨겨진 코드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
▷올해 미국의 전설적 투자가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는 익명의 한 여성이 346만 달러, 약 40억 원에 낙찰받았다. 2012년 역대 최고 낙찰가와 동급이다. 낙찰자가 막대한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은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 단 한 끼의 식사에서도 충분한 의사소통과 배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혼밥혼술’이 젊은 세대의 새 풍속으로 주목받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시대를 앞선 ‘혼밥족(族)’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한 전직 대통령 수석의 말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낯선 사람과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는 체질이란다. 3년 4개월간 박 대통령의 조리장을 지낸 한상훈 씨도 채널A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평소에도 TV를 보면서 혼자 식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해외 순방 때도 일정이 없으면 호텔에서 혼자 식사한다”고 증언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이날 점심과 저녁식사도 평소처럼 무게를 재 1인분만 관저로 들여갔고 대통령 혼자 식사를 마쳤다.
▷각계의 사람을 만나 의견을 듣고 식사를 함께하며 친교를 다져야 할 일국의 대통령이 ‘관저 대통령’이란 얘기를 들었다니 어이가 없다. 식사를 함께하면 친밀감이 더 생긴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그래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혼자 밥 먹지 말라(Never eat alone)’는 제목의 책도 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격의 없이 조언을 듣고 의지하는 비공식 자문위원들을 ‘키친 캐비닛’이라 한다.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주요 측근과 식당에 모여 국정을 논의한 것을 보고 반대파가 비아냥대며 만든 용어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가 청와대에 들어와 3인방과 회의를 하고 식사를 할 때도 혼밥을 했다니 애당초 소통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였던 셈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