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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택동]더 이상 ‘실패한 대통령’은 없어야 한다

입력 | 2016-12-13 03:00:00


장택동 정치부 차장

 박근혜 대통령의 추락은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불과 두세 달 전만 해도 여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은 레임덕이 짧거나 없을 것” “임기가 끝난 뒤에도 영향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워낙 국정 장악력이 강했던 데다 여권 내 대선 주자가 마땅치 않다 보니 여당 의원들로서는 TK(대구경북) 민심에 영향력이 큰 박 대통령의 눈치를 계속 볼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그러나 탄탄할 것만 같았던 박 대통령의 정치권력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10월 말부터 급전직하했다. TK 지역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이 3%까지 떨어지자 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게 정치적 자산이었던 친박(친박근혜)계 내에서도 등을 돌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결국 이달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돌이켜 보면 박 대통령의 ‘폐쇄성’이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비주류조차 포용하지 못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끝내 박 대통령으로부터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축출됐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적(敵)이 됐다. 이런 흐름은 4·13총선에서 ‘공천 파동’으로 이어졌고 여당이 참패하면서 박 대통령의 통치체제에 크게 금이 갔다.

 그 대신 박 대통령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욱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순실 씨였다. 최 씨가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국정에 개입하고 사익을 챙기면서 박 대통령은 치명상을 입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역사에 기록하게 될 것 같다. 설령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박 대통령이 재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단 한 명의 대통령도 확실하게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개헌에 반대하는 글들을 써 왔다. 국회가 더 많은 권력을 넘겨받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였고 지금도 그 생각이 별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최순실 청문회’에서 정확한 논리와 근거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보다는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독설을 퍼붓는 의원들,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서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당, 벌써부터 집권한 것처럼 행동하는 야당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이제 내각제로 헌법을 바꿔 대통령직을 없애거나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대통령제의 실패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오른 시점에 대권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는 야권 정치인들로서는 개헌 주장이 못마땅할 수 있다. 지금 어렵다면 차기 대선에서 후보들이 제1공약으로 개헌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력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정치권에서 합의가 안 돼 제도를 바꾸기 어렵다면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방법밖에 없다. 대통령과 그 주변에 대한 감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국회와 언론의 감시만으로 대통령을 임기 초부터 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대통령민정수석실과 특별감찰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도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겪는 동안 대통령에 대한 정보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세하게 공개됐다. 대통령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은 한층 높아졌다.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권력을 실질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 역시 정치권과 대선 주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