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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영민]대안세력의 자격

입력 | 2016-12-13 03:00:00


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지난주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혜성처럼 떠오른 고영태 씨.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고영태라는 이름이 색인 목록에 올랐을 정도다. 9일 탄핵안 가결로 식물 대통령이 된 박근혜라는 이름을 미래의 위키피디아는 어떻게 정의할까.

 부끄럽지만 상상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비선 실세를 동원해 권력을 사사로이 이용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홀로 법 위에 서려고 했던 불통 리더십의 상징’….

 촛불민심은 권력을 사용(私用)하고, 자기를 뽑아 준 국민과 소통할 줄 모르며, 판단력이 결여된 대통령에게 분노했다. 참다못한 민심은 광장에 나섰고 결국 탄핵이란 이름으로 권력을 회수했다. 과연 민심의 바람은 여기까지였을까.

 민심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권력, 국회로 눈을 돌려보면 여의도 정치인 300명도 후한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통령과 함께 탄핵당한 집권 여당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신념보다 사이비 교주에게 빠진 듯한 여당 대표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책임 있는 사퇴는커녕 “내가 언제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느냐”며 기자들과 기억력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다른 한편으로 국정 대혼란 상황에서 수습의 책임을 짊어진 야권도 대안 세력으로서의 든든한 신뢰감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자꾸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 역시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야권이 탄핵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국민과 언론 덕분이었다. 하지만 야권은 주도권 싸움으로 적전분열 양상을 보였다.

 국민 앞에선 야당 지도부가 손을 맞잡고 연대하는 듯했지만 물밑에선 사사건건 자기자랑과 상대방 헐뜯기에 바빴다. 여론의 눈치만 살피다 뛰어나간 광장에선 100m를 사이에 두고 따로 보고대회를 열고 누가 더 성능 좋은 스피커를 쓰는지 자랑하듯 음량 싸움을 벌이는 촌극도 연출했다.

 유치한 경쟁은 최순실 게이트 1, 2차 청문회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집요한 질문으로 철벽같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거짓말을 들춰낸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일부 의원의 자기 과시적 태도는 전체 청문회의 질을 떨어뜨렸다. 청문회 자리를 마치 ‘스타 정치인’으로 가기 위한 발판쯤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는 그 수준과 ‘그릇의 크기’를 엿보게 했다.

 모자라지만 그래도 현 시국에서 야당이 유일한 대안 세력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못 미더워도 당장 국민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국가적 불행을 리셋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게 지금 국민의 심정이다. 야권이 책임감 있는 자세와 진정성 있는 국정 수습 역량을 보여준다면 전폭적인 신뢰를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광장에서 보여준 분노와 성원을 그저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대통령에 대한 저주에만 써버리는 것 또한 불행한 일 아닌가. 촛불민심에 멱살 잡혀 끌려가는 모습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y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