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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혁 기자의 축구생각]14년전 그 여름, 광장을 바꾼 축구

입력 | 2016-12-13 03:00:00


 수백만 촛불의 힘이었다. 이 위력 앞에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당연한 결과였다. 분노로 가득 찬 광장은 함성으로 뒤덮였지만, 최루탄과 쇠파이프는 없었다. 원래 조용히 화내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대규모 집회에서 큰 사고 하나 없자 외신은 감탄했다. 14년 전 무더웠던 그 여름도 그랬다. 2002 월드컵 ‘히딩크 사단’이 경기를 할 때마다 세종로 사거리와 서울시청 광장엔 100만 명이 넘는 붉은 물결이 춤을 췄다. 이들은 전문적인 ‘응원꾼’이 아니었다. 집회나 시위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거리를 메우는 요즘처럼, 축구 규칙은 몰라도 8강전 홍명보의 승부차기 골에 환호했다. 준결승전에서 패배했지만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람은 드물었다.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며 옆 사람과 동질감을 느꼈다. 광장의 힘이었다. 폭력적인 축구팬 ‘훌리건’ 문화에 익숙했던 외신들은 ‘믿기 어려운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의 응원단장이었던 유영운 씨는 “붉은악마는 새로운 응원 문화를 이끌기 위해 2002 월드컵 이전부터 경기 후 경기장 청소를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당시 길거리 응원 때는 딱히 청소를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자발적으로 청소가 진행됐다. 놀라운 변화였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광장은 태극기로 뒤덮였다. 절대 존중의 대상인 태극기를 입고 쓰고 둘렀다. ‘Be the Reds!’란 구호 아래 모두가 붉은 전사가 됐다. 붉은색은 열정의 상징이지 더는 정치적 금기가 아니었다. 광장에서 성역과 금기는 사라졌다.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그 이전까지 광장은 연령별, 계층별, 성향별로 구분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2002 월드컵의 광장엔 남녀노소가 없었다. 축구 전문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장이 소통의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스포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광장은 참여해서 즐기는 곳이 됐다. 요즘 주말 집회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1주일이 빨리 가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정도다. 집회의 사안은 엄중하지만 집회의 내용은 재미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런 자발성이 국민의 힘을 지속적으로 한데 모았다.

 ‘꿈은 이루어진다.’ 14년 전 광장을 메운 함성의 간절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듯하다.

장치혁 기자 jang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