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예측 넘어 ‘불황 속 풍년’
기업들 긴축경영으로 실적 상승… 법인세 납부액 늘어… ‘불황의 역설’
“재정 활용 기회 놓쳐” 지적도

정부는 세무조사를 확대하거나 세율을 올려 세금을 더 받아낸 게 아니라지만 ‘세금을 너무 가혹하게 거둬 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런 상황을 정확히 예측했다면 나랏돈을 경기 회복의 마중물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만큼 나랏돈 활용의 골든타임을 놓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 사상 첫 240조 원 세수도 가능
기획재정부가 13일 내놓은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정부의 국세 수입은 215조7000억 원에 달했다.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3조2000억 원 증가한 수준이며 지난해 1년 전체 세수(215조9000억 원)와 비슷한 규모다.
세금이 잘 걷히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경기 불황의 영향에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조8000억 원이 더 들어온 법인세가 대표적이다. 불황을 겪는 기업들이 원가 절감에 나섰고, 원자재 가격이 떨어진 영향으로 생산원가(재료값)가 줄어들면서 그만큼 수익성이 개선돼 세수가 늘어났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재무제표 분석이 가능한 511개사 대상)의 올 1∼9월 누적 순이익은 68조367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 증가했다. 갤럭시 노트7 사태를 겪은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순이익 증가율은 14.9%에 달한다.
부가가치세(60조2000억 원)는 이미 올해 연간 목표치(59조8000억 원)를 넘어섰다. 올 상반기 한시적으로 승용차 개별소비세를 깎아주면서 차량 구매가 늘어났고, 이에 따른 부가세 수입이 증가한 게 원인이다. 여기에 수출 감소로 판매자에게 돌려주는 부가세 환급금이 줄면서 세수 증대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부동산 시장 호황에 따른 거래 증가로 양도소득세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 빗나가는 세수 예측, 재정 운용에 차질
일각에서는 정부가 목표치보다 세금을 덜 걷어 발생하는 ‘세수 펑크’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목표액을 지나치게 낮게 잡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세수 예측만 제대로 했다면 성장률이 2%대 중반에 그치고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대란이 터진 상황에서 재정을 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정치권 등의 눈치를 보지 말고 치밀한 재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세무학)는 “과세 관청의 다양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세수 전망만 제대로 해도 복지에 쓸 재원을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등 나라살림을 체계적으로 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