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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원조 보톡스 회사에 기술 수출한 거인

입력 | 2016-12-14 03:00:00

<27> 정현호 메디톡스 사장




정현호 메디톡스 사장이 보툴리눔 독소 치료제와 바이오 신약 개발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어린 시절 호기심이 많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해 주위에 묻거나 백과사전을 보며 이해할 때까지 배웠다. 좋아서 하는 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다. 커서 과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마치고 KAIST 대학원(생명과학과)에 진학했다. 양규환 교수 밑에서 단일항체클론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양 교수는 1970년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독성학 권위자였다.

 교수 연구실에는 독소가 많았다. 연구실 냉장고에 있던 독소가 눈에 들어왔다. 양 교수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가져온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이었다. 보툴리눔 독소는 생물이 만드는 물질 중에서 독성이 가장 강하다. 1g으로 100만 명 이상 죽일 수 있다.

 양 교수와 상의해 보툴리눔 독소를 박사 연구과제로 정했다. 보툴리눔 연구의 메카인 위스콘신대를 중심으로 미국에서는 보툴리눔 독소 A형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보툴리눔 독소는 A∼G형 7종이 있다. A형 연구 결과를 참고하며 B형을 연구했다. 1992년 보툴리눔 독소 B형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 그 분야 국내 1호 박사가 됐다.

 정부 요청으로 세균전에 대비해 보툴리눔 독소의 탐지, 해독, 백신에 대해 연구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1995년 선문대 교수로 옮겨 미생물학과를 개설했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교수에 대한 기초연구비 지원이 끊겼다. 정부의 지원 방향이 교수 창업과 산업기술 개발로 바뀌었다. 연구비가 필요해 궁여지책으로 2000년 후배 박사, 대학원 제자와 함께 대학 연구실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이사 사장(54) 이야기다.

 사업 아이템을 찾으려고 시장조사를 했다. 미국 제약회사 엘러간이 세계 최초로 만든 보툴리눔 독소 A형 제품(보톡스)이 신경과 근육질환 치료제로 수입돼 팔리고 있었다. 잘 아는 분야인 만큼 국산화하기로 했다. 국내 대형 제약회사 여러 곳에 투자를 요청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다행히 태평양제약이 관심을 보여 3억 원을 투자받았다. 

 밤낮을 잊고 개발에 매달려 2년 만에 보툴리눔 독소 제품을 국내 처음,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개발했다. 2004년 공장이 우수의약품제조기준(KGMP) 인증을 받자 일본 제약회사가 제품을 사겠다고 해 수출했다. 임상시험을 거쳐 2006년 국내에 제품(메디톡신)을 출시했다. 병원과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알렸다. 의사들 사이에서 싸고 효능이 좋다는 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매출이 늘어났다.

 어느 날 중동 약품도매상이 구매를 협의하러 찾아왔다. 제품에 보톡스처럼 돼지 성분이 들어 있느냐고 물었다. 배양액에 돼지 성분이 쓰인다고 하자 그냥 돌아갔다. 이슬람 시장까지 잡으려면 보톡스와 전혀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년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2011년 동물성 성분이 없는 액체 상태 제품(이노톡스)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했다. 기존 제품들은 가루 형태로 식염수에 희석해 쓴다.

 2012년 엘러간 최고경영자(CEO)가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서울에서 만난 데이비드 파이엇 회장은 차세대 보톡스 중 메디톡스의 액상 제품이 가장 뛰어나니 기술을 사겠다고 제의했다. 그는 대외비인 호주에서의 임상시험 결과도 알고 있었다.

 엘러간과 1년간 협상해 3억6200만 달러(약 3900억 원)에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으로는 유례없는 성과였다. 계약 다음 날 700억 원을 계약금으로 받기로 했다. 기술 개발에 40억 원을 지원했던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벤처기업이 많은 돈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임상시험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하기는 어렵고 국부 유출도 아니라고 설득해 총리 승인을 받았다.

 2014년 보툴리눔 독소 제품에 포함된 비(非)독소 및 동물성 성분을 완전히 제거해 보톡스 내성을 줄인 신제품(코어톡스)을 개발했다. 피부미용 시장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품과 함께 ‘물광 주사’에 쓰이는 히알루론산 필러(뉴라미스)도 내놓았다.

 메디톡스는 지금 세계 6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국내 보툴리눔 독소 시장의 점유율도 40%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수출 비중은 60%이고, 시가총액은 2조 원을 넘는다.

 정 사장은 새로운 원천기술로 보톡스의 원조 엘러간이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당뇨, 뇌질환 같은 특정 질병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면역치료제를 개발해 메디톡스를 세계적인 바이오 제약회사로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