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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저질’ 국회의원의 기업인 망신 주기

입력 | 2016-12-14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경기도 오산이 지역구인 4선의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튀는 언행’으로 종종 물의를 빚었다. 2008년 6월 광우병 촛불시위 때 경찰관 3명을 폭행해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 원의 유죄가 확정됐다. 2012년 7월에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수감 중이던 정봉주 전 의원과 관련해 “광복절 특사(特赦)를 기다려보고 10월 26일에도 석방이 안 되면 민란을 기획해 일으키려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압권은 작년 8월 “노래 부르면 예산 줄게” 발언이었다. 지역구 주민들과 함께 전북 부안의 해수욕장으로 야유회를 갔던 그는 김종규 부안군수가 사회자의 노래 요청에 난색을 표시하자 “군수가 노래를 부르면 부안에 100억 원의 예산을 내려주겠다”고 큰소리쳤다. 국민 세금이 재원인 정부 예산을 자신의 쌈짓돈으로 여기는 듯한 황당한 제안이었다.

안민석 박영선 하태경의 ‘갑질’

 최근 대기업 총수 9명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도 안 의원은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대부분 60, 70대인 기업인들에게 “전경련 해체 반대하는 분들 손들어보세요” “촛불집회에 나가본 적 있으면 손들어보세요”라며 점검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는 “나이 50도 안 된 분이 어른들 앞에서 조롱하는 발언하면 안 돼요. 자꾸 머리 굴리지 마세요”라고 면박을 줬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갑질’도 뒤지지 않았다. 박 의원은 “이 부회장이 모르는 게 많고 기억력이 안 좋으니까 더 기억력 좋고 아는 게 많은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국민 문자가 왔다”고 비꼬았다. 언제 경영권을 넘기겠느냐는 추궁도 덧붙였다. 총수들에게 전경련을 탈퇴하겠느냐고 일일이 다그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태도도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을 다룬 이번 청문회에 국민의 관심이 높았지만 이건 아니다. 증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정연한 논리와 팩트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보다 호통과 고함, 면박과 인신공격, 흠집 내기와 망신 주기가 난무하는 후진적 모습이 두드러졌다.

  ‘재벌 저격수’ ‘삼성 저격수’라는 일각의 찬사에 우쭐한 의원도 있을지 모르겠다.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청문회를 지켜본 다수 국민의 반응은 그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페이스북에는 ‘저런 저질 의원들 때문에 증인석의 기업인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는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경제기자 출신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를 지낸 이의춘 미디어펜 대표는 청문회 다음 날 온라인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계열사와 협력업체 임직원을 포함하면 삼성, 현대차그룹은 200만 명에서 300만 명을 먹여 살린다. 나머지 그룹들도 100만 명에서 수십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총수들은 어제의 국회 수난을 생각하며 ‘한국에서 꼭 기업을 해야 하는가’ 하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미래의 기업은 조국의 열망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이윤이 가장 크고 규제는 가장 작은 곳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소니 워크맨 신화’의 주역 모리타 아키오의 말을 떠올렸다.

“한국에서 꼭 기업 해야 하나”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정경유착 논란은 권력 못지않게 기업도 거듭나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보다는 기업인이 국민과 국가에 기여하는 몫이 훨씬 크다. 300명 정원을 100명 이하로 줄여도 나라에 아무 지장이 없을 의원들이 국민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지탱하게 해주는 기업인 위에 군림해 호통치고 망신 주는 왜곡된 구조를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