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국정이 안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도 “마침 정치권에서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제안해 민생을 살리고자 하는데 잘 검토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의장이 협조를 약속하는 모습은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회 주도권을 쥔 야권의 태도를 보면 제대로 협조가 이뤄질 것 같지가 않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권한대행을 계속 ‘총리’로 지칭하며 “황 총리는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과 함께 사실상 정치적 불신임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헌법과도,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억지 발언이다. 헌법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총리가 권한을 대행한다고 명시했다. 추 대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고건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던 사실을 잊었는가. 더구나 거국내각 구성을 거부해 ‘황교안 체제’를 유지시킨 건 야당이었다.
민주당이 “얌전히 국회의 뜻을 받들라”며 황 권한대행을 상대로 군기를 잡으려는 데 박수칠 국민은 많지 않다. 야당이 황 권한대행의 국정 운영을 발목 잡아 나라를 망할 정도로 만들어야 차기 대선에 유리할 것으로 믿는다면 국민의 불행이다. 이번 기회에 야당이 국정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당 원내대표의 부재로 당장 가동하기는 어렵지만 여야가 합의한 여야정 협의체 운영에도 황 권한대행은 적극성을 보였으면 한다. 야권이 여당을 뺀 야 3당 대표와 황 권한대행의 회동을 제의한 것도 형식에 다소 문제가 있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금 황 권한대행 처지에서 야권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꾸려 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비상시국이면 황 권한대행도, 국회도 비상하게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