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참관하에 진행됐다며 공개한 청와대 습격 훈련 사진. 포격을 받는 청와대 모형 건물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사진 출처 우리민족끼리 사이트
주성하 기자
아버지가 급사한 뒤 TV에 나타난 김정은에겐 자신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해마다 달라졌다. 지금은 얼굴에 두려움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지나친 자신감이 불러오는 만용과 객기까지 엿보일 정도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김정은이 즐기는 전쟁놀이 규모다. 4, 5년 전엔 포사격을 시켜도 한 개 대대나 연대 정도를 끌고 나왔지만, 요새는 최소 몇 개 군단 산하의 수백 문을 멀리 원산의 자기 집 근처까지 끌고 와서 섬을 향해 포탄을 마구 퍼붓는다.
그런데 특수전 군인 수십 명이 등장해 마구 총질하고 불을 지르더니 뒤이어 방사포 부대의 무차별 포격으로 순식간에 몽땅 무너뜨렸다. 그걸 보면서 김정은은 크게 웃으며 즐겼다. 적어도 이 놀이에 든 돈을 생각한다면 저렇게 얼굴이 밝을 순 없을 것이다. 그걸 보면서 “5년 뒤엔 서울을 날려 버리는 ‘놀이판’을 벌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쯤 김정은은 “5년 해보니 통치 같은 건 별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별장에 틀어박혀 있어도 찾는 사람도,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다. 가끔 머리도 식힐 겸 시찰을 나가 몇 마디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그럴듯한 ‘교시’로 둔갑돼 인민에게 전달된다. 고위급 간부 중 눈빛이 건방져 보이는 자를 가끔 찍어내 죽이면 할아버지뻘인 수하들은 손으로 입을 막고 무릎을 꿇고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뭔 짓을 해도 말릴 사람이 없는 시스템을 세습해준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고마울 것이다.
김정일 사망 직후엔 인민의 눈치가 보여 김일성 광장에서 “더는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라고 연설이라도 했지만 5년을 지나 보낸 지금은 그런 거짓말조차 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것 같다. 인민의 눈이 두렵다면 아버지 5년째 제삿날을 코앞에 두고 돈 들여 건물을 짓고 포탄으로 날려버린 뒤 좋다고 웃을 순 없는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참담한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은 외국물을 꽤 먹은 김정은이 집권 후 개혁개방 정책을 펼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은 5년간의 행보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헛된 기대였다. 마치 차디찬 바다에 자식을 수장시킨 부모의 심정을, 부모를 불행히 잃은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착각했던 것처럼….
더구나 김정은은 요새 남쪽 정세를 보면서 “내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려면 북쪽엔 민주주의의 ‘민’자도 허용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질 것 같다. 한국의 현 상황이 북한에선 공포통치의 고삐를 더 죄는 반면교사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북한 매체들도 아직 주민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음을 전하지 않고 있다. 탄핵 전에는 매일같이 “남쪽에서 전 국민이 떨쳐나선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생중계하듯 대대적으로 전했던 것에 비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보도 태도다. 인민이 뭉쳐 일어나면 김정은도 내몰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하다.
절망적인 북한을 보면 인민의 삶을 전혀 모르는 김정은 옆에 일반인 비선 실세가 좀 있다면 차라리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마저 해본다. 술에 취해 늙은 군 실세들에게 밤새 반성문을 쓰게 하는 안하무인의 김정은이라면 관저를 드나드는 일반인 비선 실세가 더 망칠 것도 없어 보인다. 농단할 국정도, 파괴할 헌정도 없는 저 북한의 김정은 1인 독재 체제는 순조롭게 5년째를 넘기고 있다. 이런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랑하는 혈육을 남겨두고 떠나온 고향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탈북자들의 가슴에선 매일 피눈물이 흐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