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돌이켜 보면 유난히 긴 한 해였다. 사회적으로 그다지 좋은 소식이 별로 없었다. 연초에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두고 필리버스터로 온 나라가 들썩였고, 곧이어 봄날이 되자 강남역 ‘묻지 마’ 살인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들이 이어졌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고자 하는 브렉시트로 국제 정세도 어수선해졌으며, 그러던 와중에 대단한 폭염이 찾아와 전기료 누진세로 벌벌 떨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늦가을 녘에 밝혀진 국정 농단 사태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촛불 집회 행진까지, 버스 안에서 생각난 뉴스들은 모두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드디어 지난주 공식적인 업무가 끝났다. 남들보다는 조금 이르게 한 해의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날, 우연하게도 대다수 국민의 바람대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이제는 종료된 프로젝트의 서류 더미들을 버리며 탄핵 뉴스를 들었을 때, 개운한 기분이 잠시 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희한하게도 막상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묘하게 울적해지기 시작했다. 신나서 훨훨 날아가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허탈함과 상실감이 밀려왔다.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았던 2016년이지만 한 해를 보내는 동안 미운 정이 들어버린 것일까. 시간이 빨리 흐르길 고대하는 만큼 매 순간 더 열심히 살아냈기 때문일까. 정든 것들과의 이별이 언제나 그렇듯 막상 2016년과의 작별인사를 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더 잘할 수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그렇게 원망스럽던 일들도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쉬운 마음은 내년을 잘 살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이제 막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이 되었듯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옛 프로젝트의 자리에는 새로운 팀과 일이 들어와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올해만큼만 괜찮은 한 해가 된다면, 이 정도로만 열심히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일이 말이다.
사실 이 글은 휴가지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다. 웅웅거리는 비행 소음을 배경으로 1년 치 노동의 넓이와 깊이와 무게를 재어 본다. 한 해 치 뉴스를 돌이켜 보며 나는, 또 우리 사회는 발전하고 있는가를 따져본다. 농사짓는 농부처럼 1년이라는 시간에 맞춰 매년 씨를 뿌리고 거두며 살고 있으니, 연말의 마지막 날들은 내년의 새로운 씨앗을 준비하는 날들로 보내야겠다. 더불어 새로운 열두 달을 선물받는 1월까지, 올해를 잘 놓아줄 수 있는 휴가가 되기를 바라본다. 거리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보다 이렇게 또 한 번 함께 1년을 살아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 오르는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