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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료칸 온천서 피로 풀자” 푸틴 “피로한 회담 아니면 돼”

입력 | 2016-12-16 03:00:00

아베, 고향에 첫 해외정상 초청… ‘지각대장’ 푸틴 2시간 늦게 러출국
아베-푸틴 16번째 정상회담 “쿠릴 4개섬-경협 솔직한 대화”
16일 도쿄로 옮겨 2차 회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일 오후 야마구치(山口) 현 나가토(長門) 시의 전통 료칸(旅館) 오타니(大谷) 산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양국 최대 현안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문제와 경제협력 등을 논의했다. 야마구치는 아베 총리의 고향으로, 정상회담이 열린 오타니 산장은 과거 일왕이 투숙하기도 했던 명소다. 냇물이 흐르는 산속 온천을 회담장으로 정한 것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푸틴 대통령과 인간적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아베 총리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날 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푸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의 피로를 온천에서 풀어 달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러일 관계에 큰 진전이 되기를 기대한다”면서도 “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것도 좋지만 회담에서 피로하지 않으면 된다”고 답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에는 영토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것처럼 순순히 양보하진 않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오후 9시경 정상회담을 끝낸 아베 총리는 기자들에게 “푸틴 대통령과 모두 3시간, 양국 간 문제와 국제적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뒷부분 95분간은 통역만을 끼고 푸틴 대통령과 일대일로 회담했다. 쿠릴 4개 섬에 대한 특별한 제도하에서의 공동경제활동, 평화조약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야마구치에 오기 전 옛 섬 주민에게서 받은 편지를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논의는 내일도 이어질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전하고 싶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회담은 ‘지각 대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푸틴 대통령이 출국을 2시간 이상 늦추면서 일정이 다소 틀어졌다. 당초 정상회담은 오후 4시로 예정돼 있었지만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이 회담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일부러 늦게 출국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아베 총리는 그 사이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묘소를 참배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숙원인 쿠릴 4개 섬 반환 문제에서 진전을 기대하고 있으나 전망은 밝지 않다. 회담에 이어 만찬을 함께한 두 정상은 16일 도쿄에서 한 차례 더 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할 계획이다. 푸틴은 2009년 방일했으나 당시는 총리 신분이었고 대통령으로서는 11년 만에 일본을 다시 찾았다.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은 올해에만 4번째, 아베 1기 내각까지 포함하면 총 16회째가 된다.

 옛 소련과 일본은 1956년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조약 체결 후 소련이 쿠릴 4개 섬 중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두 섬을 인도한다고 발표한 바 있으나 양국 간 평화조약은 전후 71년이 지난 지금도 체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영토 문제 진전에 매달리는 것과 달리 러시아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강제병합 이후 계속되고 있는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나 일본과의 경제협력 강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역내 강국인 일본과 러시아의 접근에 중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외교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자국과 신밀월 관계인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 개선에 경계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양국 간 우호협력 관계는 지역의 평화 및 안정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