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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兆 가계빚 폭탄’ 금리 1%P뛰면 파산위험 6만가구 늘어

입력 | 2016-12-16 03:00:00

[美 금리인상 폭풍]엎친데 덮친 한국경제 영향은




기준금리 6개월째 동결… 고민 깊어진 한은총재 1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한 이주열 한은 총재가 자료를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져 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1.25%로 6개월 연속 동결했다. 사진공동취재단

 1년 만에 금리 인상을 재개한 미국이 내년에 추가 인상의 ‘가속페달’을 예상보다 더 세게 밟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 정국으로 불안한 국내 금융시장과 수출 등 실물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초저금리에 기대 빚을 늘려온 서민들과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들이 금리 인상의 회오리에 빨려들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의 ‘성장 절벽’ 우려가 높지만 한국은행은 미국의 금리 인상 압력과 1300조 원을 돌파한 가계 빚 부담 등을 감안해 15일 기준금리를 6개월째 동결했다.



① 한미 기준금리 역전으로 외국인 떠날까

이날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한국은 동결하면서 양국 기준금리 차가 0.5%포인트로 좁혀졌다. 당장 글로벌 자금의 국내 금융시장 이탈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7년 만에 금리를 올렸을 때도 한국 증시 및 채권시장에서 3개월간 11조 원 이상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미 연준은 내년 3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을 시사했다. 현재 0.50∼0.75%인 미국 금리가 내년에 한국 기준금리(1.25%)를 따라잡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자금 유출은 더 빨라지고, 강(强)달러 시대를 맞아 치솟고 있는 원-달러 환율 상승세(원화 가치 약세)도 더 심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풍부한 외환유동성과 외환보유액 등으로 대외 건전성이 양호해 당장 급격한 자본 유출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② 빚 많은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 위기감 고조

13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금리 인상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소다. 이미 국내 대출금리는 미국 금리 인상 전부터 빠른 속도로 뛰고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의 60%가 변동금리 상품임을 감안하면 800조 원 안팎의 가계 빚이 금리 상승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간 8조 원 정도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특히 고령층과 영세자영업자, 저소득층, 다중채무자 등은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대출 연체나 파산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한은 금융안전보고서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금융·실물자산을 다 처분해도 빚을 갚을 수 없는 부실위험 가구가 6만 가구 더 늘어난다.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급증하면 가계소비가 더 얼어붙어 내수경기가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③ 회복 조짐 보이던 수출 전선도 먹구름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면 국내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국내 수출 회복세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이미 신흥국 경제는 자본 유출, 통화 가치 약세 등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금융위기 이후 외채를 크게 늘린 일부 국가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까지 나온다. 한국의 대(對)신흥국 수출 비중은 현재 57.1%. 신흥국 경기 침체는 국내 수출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로 국제유가 상승 기대가 높지만 달러 강세가 이를 제약할 수도 있다. 주요 산유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 유가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국내 석유화학, 자동차 업종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④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압력 커질 듯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가계와 기업의 소비, 투자가 얼어붙어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탄핵 국면에 따른 정치적 불안도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금리 인상 외에도 내년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의 출범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가시화 등 국내 경제에 영향을 줄 대형 변수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주열 총재는 “현재 국내 경제의 상방 요인보다 하방 리스크가 더 크다. 정치적 불확실성 등 국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내년에 트럼프발 인플레이션 기대가 현실이 되면 수입 물가를 통해 국내 물가도 오를 수 있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⑤ 한은도 미국 따라 금리 올리나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침체된 국내 경제를 고려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낮춰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총재는 이날 “지금 상황에선 금리 정책을 펼 때 성장, 물가뿐 아니라 금융 안정에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당분간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리기 어렵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반대로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바로 올리기도 어렵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한은의 금리 인상이 정부와 엇박자를 내 경기 회복의 불씨마저 꺼뜨릴 수 있어서다. 안 원장은 “내년 한은의 운신의 폭은 작을 수밖에 없다. 당분간 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가면서 국내외 상황을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임수 imsoo@donga.com·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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