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아침에 회원모집, 저녁에 폐업… 환불도 안 해주고 ‘먹튀’

입력 | 2016-12-17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헬스클럽의 불편한 진실




  

‘몸짱’ ‘건강’ 열풍으로 헬스, 요가34, 피트니스 등 전국 체력단련시설은 2010년 4700여 곳에서 2012년 5300여 곳, 2014년에는 6300여 곳으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종사자 수도 2010년 1만6000여 명, 2012년 1만8000여 명에서 2014년 2만3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문제는 헬스장 등 체력단련시설이 늘면서 이에 따른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는 점.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헬스장 및 요가시설 이용과 관련한 피해구제 신청은 1364건으로 2014년(1148건)에 비해 18.8%가 증가했다. 피해 유형으로는 업주가 과다한 위약금을 요구하는 등 계약 해지를 둘러싼 분쟁이 1174건(86.1%)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폐업 등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피해(175건·12.8%)가 차지했다.



‘먹튀 헬스장’


 장모 씨(45)는 지난해 12월 동네 헬스장 1년 이용권과 PT(personal training·개인레슨)를 150만 원에 결제했다. 하지만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헬스장 기구 중 일부가 고장이 났지만 수리나 교체가 되지 않았고, 헬스트레이너도 갑작스럽게 그만둔 것. 급기야 올해 2월 헬스장 측은 회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폐업을 통보했다. 장 씨는 “폐업 통보를 받은 다음 날 헬스장을 찾아가 보니 문이 닫혀 있었고, 운동기구도 사라진 상태였다. 헬스장 주인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잔여 이용료를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현재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먹튀 헬스장’의 특징 중 하나는 ‘폭탄 세일’을 미끼로 한다는 점이다. 최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김모 씨(35)는 지난해 5월부터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세일을 미끼로 소비자들에게 회원권을 구매하도록 한 뒤 실제로는 헬스장을 개장하지 않고 돈만 챙겼다. 또 같은 시기에 서울 중구 광희동에서 운영하던 헬스장을 5개월 만에 폐업하고 회원들에게 환불도 해주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폐업 당일 오전까지도 신규 고객을 유치했다가 저녁에 폐업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일시불로 끊을 경우 할인을 더 해주겠다는 유혹도 소비자가 일시불로 지불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라며 “한 먹튀 헬스장의 경우 대폭 할인을 통해 3, 4개월만 운영을 하고 2억 원 이상을 챙겼다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창용찬 대한스포츠아카데미협회 대표는 “폐업하는 헬스장 중에는 업주가 충분한 준비 없이 외부 투자자를 통해 창업 자금을 지원받은 경우가 많다. 헬스장 운영 초기에는 회원권을 할인된 가격에 팔아 돈을 벌고 빚을 갚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규 회원 유치 실패로 수익이 줄고, 이 때문에 빚을 갚지 못해 도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 째라’식 환불 거부도

 인천에 사는 박모 씨(27·여)는 올해 8월 3개월짜리 헬스장 이용권을 정상가보다 할인된 15만 원(월 5만 원)에 계약했다. 한 달 후 이사를 가게 된 박 씨는 헬스장에 계약 해지와 환불을 요구했지만 헬스장 측은 “한 달 정상 이용가는 8만 원”이라면서 “할인 금액이 아닌 정상가를 기준으로 이용료를 산정하고, 위약금을 추가 공제해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헬스장의 위약금은 총 계약금의 10%다. 1년 헬스장 이용권을 100만 원에 산 소비자가 6개월 뒤에 계약을 해지하면 6개월 사용료 50만 원과 위약금 10만 원(100만 원의 10%)을 뺀 4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상식적으로는 15만 원에서 박 씨의 한 달 이용료(5만 원)와 위약금 10%(1만5000원)을 뺀 8만5000원을 환불해줘야 한다. 하지만 헬스장 측은 할인 전의 정상가(한 달 8만 원)를 한 달 사용료로 적용하고, 3개월 치인 24만 원의 10%인 2만4000원을 위약금으로 뺀 뒤 나머지를 환불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박 씨는 4만6000원만 돌려받는다. 박 씨는 “계약 때는 이용료와 위약금 산정 기준에 대한 고지도 없었다. 더욱이 이런 식으로 황당한 계산법을 적용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가 실제로 지불한 금액(할인 금액)을 기준으로 이용료와 위약금을 산정해야 한다”며 “위약금의 산정 기준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업주가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헬스장 업주가 계약서에 임의로 ‘환불 불가 조항’을 끼워 넣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불법이다. 직장인 김모 씨(32)는 헬스장 6개월 이용권을 계약했지만 잦은 출장 등으로 운동을 꾸준히 할 상황이 못 되자 헬스장 측에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헬스장 측은 계약서에 적혀 있는 환불 불가를 근거로 정 씨의 요구를 거부했다. 하지만 환불 불가는 효력이 없는 조항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계속거래(헬스장 등 1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어지는 거래) 계약을 체결한 소비자는 계약 기간 중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뾰족한 방법도 사실상 없어…


 헬스장과 관련한 피해에서 가장 큰 문제는 끝까지 업주가 버티거나 환불을 거부할 경우 소송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은 분쟁을 중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헬스장 업주가 소비자원의 권고를 무시하고 환불을 거부하면 소비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불 금액 자체가 소송까지 하기에는 적은 경우가 태반이라 피해자들은 속만 앓을 뿐이다.

 한국소비자원은 민원을 접수하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나 관련 법률(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약관법 등)에 따라 중재안을 권고한다. 업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사건을 이관해 조정결정문이 나오지만 이 또한 강제력이 없다. 소비자원은 합의율을 높이기 위해 행정 처분 권한이 있는 관할 구청에 헬스장의 위법 사실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돕는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구청에 영업 정지나 과태료 처분이 필요하다고 공문을 보내면 그제야 소비자와 합의에 이르는 업주도 많다. 이 경우 합의율이 70∼80%까지 올라가지만 업주가 연락을 끊고 잠적하거나 끝까지 환불을 거부하면 소비자는 결국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