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영화 구성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세월호 참사를 섞어 놓은 듯하다. 강진으로 원자로 계통에 이상이 발생하고 방사능이 누출된다. 설상가상으로 폐연료봉을 보관하는 수조에 균열이 생기면서 수소폭발이 예고돼 있다. 대한수력원자력 사장이 해수 이용을 막는 것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에 해수 투입을 늦게 결정한 것과 똑같다. 무엇보다 공감 가는 대목은 재난 앞에 우왕좌왕하면서도 국민과 언론을 속이기에 급급한 정치지도자들이다.
어디서 본 듯한 무능 리더십
환경단체들은 모처럼 신이 났다. 상영관을 빌려 영화를 단체 관람하고 ‘잘 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며 영화로 조성된 불안감을 반핵 운동으로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영화를 계기로 사람들이 원전의 효용성과 경제논리 이면의 리스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현실에선 가능하지 않은 일이 영화적 상상력과 결합돼 불안감을 부추기고 그렇지 않아도 추락한 정부 신뢰도만 더 떨어뜨리게 될까 걱정도 된다.
다만 영화를 계기로 높아진 원전에 대한 관심이 진짜 원전 문제 해결을 위한 토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첫째는 원자력 행정의 투명성과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다. 정부와 원자력 그룹은 원전 감시활동에 시민사회와 지역 주민을 참여시키고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는 호기심 때문에 열리지만 현실의 재난은 불통과 은폐에서 시작된다. 영화에서도 대통령이 국민에게 원전 사고 실상을 낱낱이 공개하고 도움을 호소했을 때에야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재앙은 불통과 은폐에서 시작돼
둘째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다. 이것은 원전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용한 핵연료를 어떻게 처분할 것이냐는 문제다.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6월 발표된 위원회 결론은 ‘안정적 저장시설을 만들어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걸 몰라서 그 많은 돈을 써서 위원회를 운영했나. 민감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다음 정권으로 넘기겠다는 이런 꼼수가 박근혜 정부의 실력이다. 진짜 당면한 문제는 수조의 수소 폭발이 아니라 수조의 과밀이다. 영화를 보긴 보되 똑똑하게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