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다시 몰려드는 日다카오카시
“꼭 필요한 분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 전달하고 싶다”는 후타가미 도시히로 사장(왼쪽), 구부러지는 접시 ‘스즈가미’를 들어 보이는 좌종 전문 장인 시마타니 요시히로 사장(가운데), 얇은 금속판에 채색하는 기법을 스스로 개발해낸 오리이 고지 사장(오른쪽).
하지만 일본 사회 전반을 강타한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그리고 생활양식의 변화 바람은 이곳을 비켜가지 않았다. 다카오카의 동기, 철기(鐵器) 매출액은 1990년 374억5000만 엔(약 3782억 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급전직하해 2012년에는 120억 엔(약 1212억 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젊은이들이 하나둘 도시로 떠나가면서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공방들이 줄을 이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장인들이 떨쳐 일어섰다. 선구자는 주물 회사 노사쿠(能作)의 4대째 사장 노사쿠 가쓰지(能作克治·58) 씨. 2003년 사장에 취임한 그는 정해진 일만 하청받아 하던 지역 시스템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디자인의 완제품을 내놓아 좋은 평을 받았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이웃 기업에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며 다카오카 업계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다카오카의 혁신은 젊은 장인 지망생들을 이 지역으로 불러 모으는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찾아간 다카오카는 고즈넉한 전통의 정취와 젊은 열기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었다.
전통산업 시스템을 깬 선구자 노사쿠
다카오카의 금속산업 부흥은 2003년 노사쿠의 혁신에서 출발했다. 노사쿠의 주물공장에서 젊은이들의 열기가 느껴진다. 다카오카(도야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4대째 사장인 노사쿠 씨는 판매원이나 디자이너의 의견을 참고해 스스로 디자인한 인테리어 잡화, 테이블웨어, 조명기구 등을 개발해냈다. 2003년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상품을 도쿄 전시회에 내놓자 반응이 좋았다.
대표 상품은 주석 100%를 사용한 바구니 등 주방용품. 부드러운 주석의 특징 덕에 힘을 주면 자유자재로 구부러진다. 용도에 맞게 과일 그릇이나 와인병 받침대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노사쿠 제품은 현재 아시아 유럽 등 15개국으로 수출된다. 15년 전 채 10명도 되지 않던 직원 수는 어느새 120여 명으로 불어났다. 직원들의 평균 연령도 50대에서 30대로 낮아졌다. 주석의 항균성과 부드러운 특성을 살려 의료용품 분야에도 진출하고 있다.
장녀 지하루(千春·30) 씨는 나이든 장인들이 공장에서 금속을 녹이는 가업(家業)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일찌감치 고베(神戶)의 패션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다 2008년경 노사쿠의 주석 제품이 화제가 된 것을 계기로 3년간 일한 회사를 그만두고 귀향했다. 지하루 씨는 “주물이라고 하면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3D산업의 이미지가 컸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따로 직원모집 공고를 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쿠는 지역 공헌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공장 견학을 하고 간 관광객과 학생이 8000여 명에 이른다. 내년 봄 신사옥이 완공되면 이를 연간 2만 명 규모로 늘려 다카오카 시와 도야마 현의 관광허브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다카오카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면 외부로 나가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역 공헌은 아낌없이 해야 한다”는 게 노사쿠 씨의 지론이다.
모멘텀팩토리 오리이의 공장에서 착색에 열중하는 호리우치 마리도 씨. 교토 출신인 그는 전공인 금속공예를 살리기 위해 연고가 없는 다카오카로 찾아왔다.
후타가미는 거푸집에서 꺼낸 그대로, 꺼칠한 표면을 살린 제품들을 만든다. 고운 모래로 틀을 만들기 때문에 모래의 질감이 살아 있다. 사용하면서 색깔이 변하는 것도 즐길 수 있다. 후타가미 사장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보다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만든다”는 것에 집착한다. 물건이 넘치는 시대이기에 필연을 느끼게 하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만난 고졸 신입사원 이가라시 사야카 씨(19)는 “고교 때부터 이 회사를 노렸다”며 “졸업과 동시에 취직해 꿈이 이뤄졌다”고 기뻐했다. 현재 직원 16명의 평균 연령은 38세. 매출의 85%를 신브랜드가 차지하며 세계 22개국에서 판매된다. “본업이던 불교용구 제작은 60세인 직원 한 사람이 전담합니다. 기존 일감이 줄었다기보다 다른 분야의 매출이 늘어난 거죠.”
전통 기술로 빚어낸 소리, 특이한 주석 접시가 지켜준다-시마타니쇼류공방
1909년 창업한 시마타니쇼류(昇龍)공방은 불교에서 독경할 때 울리는 좌종(坐鐘·우묵한 그릇처럼 생긴 종) 전문 제조업체다. 황동판을 망치로 두들겨 둥그렇게 만드는 작업부터 최후의 조음(調音) 기술까지, 대대손손 기술이 이어져 왔다.
4대째 사장인 시마타니 요시히로(島谷好德·43) 씨는 도쿄의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가업을 잇기 위해 낙향했다. 성형에 7년, 조음에 12년, 한 사람 몫을 하기까지 긴 세월이 흘렀다. 특히 조음은 장인의 감에 의존해 좌종의 입 부분을 망치로 두들겨 조화 있는 소리를 이끌어내는 기술로, 일본 내에서도 기술자가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수가 적다. 그의 부친이 이 기술로 지난해 일본 정부로부터 ‘현대의 명공(名工)’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기술이 매출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매출은 전성기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다. 그에게 힘이 된 것은 같은 처지의 다카오카 전통산업청년회 회원들이었다. 이들과 10여 년 전부터 기프트쇼(일본 최대의 생활잡화 국제박람회)에 출전했다. 전환기는 2013년에 찾아왔다. 망치로 단금 하는 고유의 기술을 살려 내놓은 얇은 주석 접시 ‘스즈가미’가 엄청난 히트를 친 것이다. 색종이처럼 자유롭게 구부러지는 이 특이한 그릇은 3년간 4만여 장이 팔려 나갔다. 5명이던 사원은 현재 14명으로 늘었다.
자신감을 회복한 시마타니 씨는 “본업인 좌종도 해외에 소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유럽의 전시회에 스즈가미와 함께 좌종도 내놓아 보니 그 차분한 음색에 반한 프랑스인들이 명상용으로 주문해왔다고 한다.
전통기술 살려 금속에 ‘색’ 입히니 해외에서 주문 쇄도
주석 100%로 만든 노사쿠의 사각접시(위 사진 왼쪽)는 소비자가 자유자재로 구부려 원하는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 와인 받침대로 변신한 접시(위 사진 오른쪽). 거푸집에서 바로 꺼낸 황동의 질감을 살린 후타가미의 생활용품은 오래 사용할수록 손때 묻은 색감을 즐길 수 있다(아래쪽).
3대째 사장인 오리이 고지(折井宏司·46) 씨는 도쿄의 정보통신 기업에 취직해 일하다 집안 어른으로부터 “오리이착색소의 기술이 유실된다”는 걱정을 듣고 26세 때 귀향했다. 그러나 입사 2년 뒤 회사 매출은 전성기의 45%로 줄었다.
그는 시가 운영하는 디자인공예센터 인재양성스쿨에 3년간 다니며 주물과 가공 기술을 공부한 끝에 얇은 동판에 착색하는 기법을 개발해냈다. 동이나 황동 소재에 오묘한 색감을 낸 이 회사의 상품은 점차 알려져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호텔, 두바이의 고급 빌라 등의 인테리어 자재용으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매출은 3년 전 5000만 엔에서 2년 전 8000만 엔, 지난해 1억2000만 엔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수작업이 많아 몇 달 치 주문이 밀려 있습니다. 저희가 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착색 작업에 열중하던 호리우치 마리도 씨(23)는 교토에서 금속공예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연고가 없는 다카오카까지 찾아왔다. 그는 “하루하루 일 배우는 재미에 빠져 산다”며 “회사가 잘되니 급여도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방학 때면 도쿄의 미대생들이 찾아와 졸업하면 오겠다고 말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고 오리이 사장은 자랑한다.
다카오카 장인들의 ‘마을 만들기’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경기 침체, 젊은층의 대도시 집중…. 일본에서는 요즘 ‘지방 소멸’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인구 17만 명의 중소도시 다카오카도 이런 걱정에서 벗어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장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거꾸로 대도시에서 다카오카를 찾아오는 움직임이 적지 않아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흔히 ‘마을 만들기’에는 외지인, 젊은이, 무모한 사람 셋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다카오카 장인들의 현대화에 선구자 역할을 한 노사쿠의 사장은 사진기자 출신으로 결혼 뒤 처가의 가업인 노사쿠에 입사한 경우이니 ‘외지인’에 해당한다. 이런 그가 발상의 전환으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젊은이들이 모이고 있다.
유사한 업종에 종사하다 보면 경쟁이 치열할 것 같지만 다카오카 장인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도우며 공생을 지향한다. 상대의 잘 팔리는 물건을 피하면서 개발을 진행한다. 가령 노사쿠는 주석 100% 소재의 구부러지는 특성을 살려 술잔, 주전자, 구부러지는 접시를 만들지만 후발 주자인 시마타니쇼류공방의 히트 상품인 스즈가미에는 손대지 않는다.
이번에 둘러본 4개사 모두 주문을 감당 못 해 수개월 치 일감이 밀려 있지만 무모하게 회사를 늘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이했다. 자신들은 공장이 아니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가는 곳마다 “왜 대량생산을 해서 많이 팔고 많이 벌어들이지 않느냐”고 물으면 “우리가 만드는 물건은 수작업을 거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중요한 것은 자기 지역 고유의 가치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카오카의 전통공예나 수백 년간 지켜온 거리 풍경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죠. 그 매력을 잘 살리면 젊은 금속공예 크리에이터들이 찾아오게 되는 겁니다.” 다카오카 시 디자인공예센터 히노 도루(日野利) 씨의 말이다.
이들은 ‘지방 소멸’이란 말에 온몸으로 반론한다. “미래는 지방에서 시작된다”며.
다카오카(도야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