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이재명 기자
아이는 이번에 “라디오”를 외쳤다. ‘오징어-어버이-이용소-소방대-대갈통-통지서-서방질-질그릇-릇데껌(롯데껌)-껌딱지-지랄병-병맥주-주댕이-이슬비-비니루(비닐)-루돌프-푸라자(브래지어)-자전거-거시기….’ 결국 아이가 짜증을 내자 엄마는 “단어 한 방으로 이기면 된다”고 귀띔했다.
아이는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이번엔 할머니가 먼저 해. 산 이름으로.” ‘설악산-산기슭!’ “할머니 졌지?” 아이가 환호성을 지를 때 할머니의 한마디. “슭을(썩을) 놈!”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한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이런 걸 지시라고 내렸다. 국민 집단 우울증은 필연적 결과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름하여 ‘국정 농단 끝말잇기’다. 첫 시작은 ‘태진아’다. 태진아가 국정 농단과 무슨 상관이냐고?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면 안다. 거기엔 이런 질문이 올라 있다. “밖에서 ‘박근혜는 태진아랑’이라고 하는데, 둘이 무슨 사이죠?” 여기에 한 착한 시민은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잘못 들으신 겁니다”라고 친절한 답변을 달았다.
태진아를 잇는 말은 ‘아몰랑’이다. 국정조사에 불려 나온 증인들의 한결같은 답변이다. ‘역대급 천재’ 김 전 실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몰랑을 잇는 단어는 ‘랑데부’다. 밀회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최순실 등 ‘보안손님’들은 청와대 관저에서 박 대통령과 밀회를 즐겼다. 랑데부는 ‘부박’으로 잇겠다. 부박은 천박하고 경솔하다는 뜻. 이 사태의 본질은 부박함이다. 부박을 잇는 단어는 ‘박근혜’다.
박 대통령이 1995년 펴낸 수필집 ‘내 마음의 여정’은 지금 보면 예언서에 가깝다. 거기에 나오는 글귀들이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필요는커녕 오히려 사회에 해를 끼치고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줘 제발 물러나 줬으면 좋겠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권력의 비호 아래 지내왔거나 뭐든지 다 들어주는 부모의 보호 아래 금지옥엽으로 자란 사람들은 그 권내(權內)를 벗어나면 참으로 비참한 지경이 되기 쉽다.’ ‘아무리 좋은 방향을 일러줘도 망하는 길이 더 좋아 보이고 더 끌리니 어찌할 것인가.’
‘박근혜’를 잇는 단어는 ‘혜성같이 등장한 김진태’로 하겠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바람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주옥같은 말로 ‘촛불집회 홍보대사’에 위촉됐다. 이어 “우리(탄핵 반대 시위자)도 백만 모일 수 있다”며 촛불을 횃불로, 횃불을 들불로 키우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압권은 따로 있다. 그는 9일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게 바로 보수입니다.” 공자, 맹자보다 훌륭한 스승은 ‘웃자’라더니 김 의원이 ‘웃자’ 반열에 등극한 순간이다.
그렇기에 더 많이 웃어야 한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웃으면 복이 온다)라고 하지 않는가. 내년은 대한민국에 많은 복이 필요한 해다. 올해 마지막 ‘달콤쌉싸래한 정치’는 ‘정유라 건배사’로 마무리하려 한다. 이 모든 사달이 정유라의 개에게서 비롯됐기에…. 정! 정치인들이여, 유! 유불리만 따지면, 라! 나라가 결딴난다. 다시 정! 정말 국민을 위한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머리를 맞대세요. 유! 유 갓 잇?(알았죠?) 라! 라잇 나우(지금 바로).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