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가 노도처럼 모든 것을 삼켰어도 다른 의견, 다른 생각을 말하던 이가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묵살됐다… 탄핵안이 헌재로 넘어간 지금 꼭 하고 싶은 말은 “촛불로 헌재를 겁박하지 말라” 헌재가 소신껏 심판할 수 있어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심규선 대기자
그런데 요즘, 가슴 한편에 쟁여 뒀던 말들이 고개를 든다. 대세와는 다른 의견을 가졌던 이들의 말이다. 밝혀두건대, 그들이 박 대통령을 두둔했다는 뜻은 아니다. 급격한 쏠림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원했던 발언들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입길에 많이 올랐다. 남이 피운 모닥불 옆에서 곁불을 쬐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 전술 전략과 콘텐츠가 부족한 탓인지 너무 즉흥적이다, 가진 자의 여유는 없고 있는 놈이 더한다는 인상을 준다고 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지는 몰라도 ‘대통령 자격’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근자에 올수록 언론에 대한 보수층의 쓴소리가 늘고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단, 문 전 대표의 주장과는 결이 다르므로 선을 긋고 싶다. 그는 며칠 전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주요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종편에 대한 재인가 기준과 요건을 엄격하게 하겠다”는 말도 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나는 최근 ‘종편 데모크라시’와 ‘종편은 종일 편파 방송의 약자’라는 뼈아픈 비판을 들었다. 문 전 대표의 현실 인식과는 완전히 반대다. 5년 전 종편이 개국할 때 “태어나서는 안 될 방송”이라며 소속 국회의원의 출연까지 금지시켰던 민주당이 세월이 흘러 종편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것은 골계다. 이는 종편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커졌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해당 방송사들이 고민해야 할 일이지 유력 대선주자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언제부터 주최 측이 불러주는 시위 참가 인원을 그대로 받아 적었느냐, 촛불민심만 민심이냐, 촛불시위에 꼭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가서 실패한 대통령에 대한 증오를 가르쳐야 했느냐,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왜 촛불을 놓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못 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최순실 씨 소유라는 태블릿PC의 출처 논란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 의외로 많은 비판을 받았음을 밝혀 둔다.
타사의 보도를 자체 검증하지 않고 출처만 밝힌 채 그대로 갖다 쓰는 일이 잦아진 것을 비판하는 눈 밝은 독자와 시청자도 많았다. 예전에는 극력 피하던 일이었다. 관심은 높은데 확인할 시간과 여력이 없어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사 질을 담보하려면 ‘확인 후 보도’를 원칙으로 하던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언론이 모든 주문에 답할 의무도, 능력도 없다. 그렇지만 기자들은 평소 불편부당과 균형감각, 반론권 등의 말을 들으며 비록 어떤 주장이 대세와 다르다 하더라도 묵살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 왔다.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면, 존재하는 것이 모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것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를 대표하는 단어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탈진실)’를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을 향한 호소나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것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쓰지 않던 이야기를 뒤늦게 고백한다고 해서 언론인으로서의 직무유기가 덮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포스트 트루스’는 언론인에게 버거운 적이 늘었음을 경고하면서 한층 더 분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해가 저물어 간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