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성 경제부장
한반도에서 닭이 사육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 문헌인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에 한국에 꼬리가 긴 세미계(細尾鷄)가 있다는 기록으로 미뤄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육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오랫동안 닭은 우리 민족과 같이하며 영양을 책임져줬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닭은 한민족의 삶과 밀접한 관계다. 닭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10번째 동물로 전통 신앙 속에서 다양하게 응용됐다. 특히 무속 신앙에서 닭은 인간의 좋지 못한 운수나 운명을 대신해 죽음으로써 인간을 원 상태로 복귀하게 하거나 회생케 하는 역할을 맡는다(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2009년·국립민속박물관).
문제는 AI가 당분간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도 안 했다는 게 무엇보다 우려스럽다. AI는 기온이 4도 이하(섭씨 기준)일 때 생존율이 높아진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겨울(2016년 12월∼2017년 2월) 기온은 예년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12월의 평균 온도는 1.5도이고, 1월은 영하 1도, 2월은 1.1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올해 겨울은 예년보다 건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기로 전염되는 AI 바이러스는 건조할수록 확산이 잘된다.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을 해야 할 정부는 늑장 대응과 엇박자 대책으로 갈팡질팡하면서 문제만 키웠다. 이번 AI 발생 초기 전문가들은 독성이 강하고 전파력이 이전보다 빠른 만큼 대책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듣지 않았다. 여기에 인간의 탐욕은 AI가 맹위를 떨칠 근본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이번 AI의 주 타깃이 되고 있는 산란계(알 낳는 닭)는 철사로 만든 닭장에 넣어져 키워진다. 이 닭장의 바닥면적이 A4 용지보다도 작다. 일부 농장에서는 이런 닭장을 최대한 쌓아두고 70만 마리까지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번 바이러스가 퍼지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이번 AI 대란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내년은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다. 닭의 해에 수천만 마리의 닭을 질식사시켜 흙구덩이에 파묻거나 섬유강화플라스틱(FRP) 통에 보관해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닭에게 정말로 미안하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