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대선 승리 4주년 날 수감번호 ‘628번’ 최순실 첫 공판 변호인 “대통령과 공모 안해”
‘죽을 죄’ 지었다더니… 비선 개입을 통해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구속 기소)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위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최 씨가 입장하며 방청석을 바라보는 모습. 최 씨는 이날 카메라 촬영이 허용되는 동안 자숙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 재판이 시작되자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정 농단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돼 19일 첫 재판에 나온 최 씨는 수감번호 ‘628번’이 뚜렷한 연갈색 수의(囚衣)를 입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 들어섰다. 방청석을 채운 시민과 취재진 등 120여 명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여성 청원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한 최 씨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한 채 피고인석으로 이동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자숙하는 듯했던 최 씨의 태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취재진의 카메라가 철수하자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최 씨는 재판부의 질문에 머뭇거리며 방청석에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답변하기도 했지만 재판 내내 정면을 응시했다. 최 씨의 첫 재판이 열린 이날은 공교롭게도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날이었다. 누구보다도 박 대통령의 당선을 기뻐했을 최 씨는 이후 비선(秘線) 실세로 군림하며 전횡을 일삼은 끝에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섰다.
이 변호사는 “검찰 공소사실 중 8가지가 대통령과 공모했다는 것인데 공모한 사실이 없다. 전제가 되는 공모가 없기 때문에 죄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 씨 측은 핵심 물증인 태블릿PC의 검증을 법원에 요구하는 등 검찰 수사 전반을 부정하는 의견을 내놓아 앞으로 검찰과의 치열한 공방을 예고했다.
최 씨 측의 적극적인 입장 표명으로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첫 재판이 끝날 무렵, 재판부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최 씨는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 앞으로 공판에 성실히 임하겠다”라고 답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방청석을 한 차례 힐끗 쳐다본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최 씨와 함께 기소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권오혁 hyuk@donga.com·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