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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최순실-안종범, 서로 짜맞춘듯 ‘공모관계 모르쇠’

입력 | 2016-12-20 03:00:00

[최순실 첫 재판]




피고인석 향하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인 최순실 씨(수의 입은 사람)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들어와 피고인석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개정 전까지 취재진의 법정 촬영을 허가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19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은 두 사람과 박근혜 대통령을 ‘3각 공모’ 관계로 본 검찰의 공소사실을 허물겠다는 공통의 목표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혐의에서 미묘한 입장차를 보였다. 최 씨는 박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이 공모한 일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나선 반면,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은 안 전 수석은 변호인을 통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비선 실세가 없음을 확인한 뒤 대통령의 뜻을 수행한 것뿐이라며 최 씨에 대해서만 ‘모르쇠 전략’을 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최 씨의 사익추구와 무관한 정당한 직무집행”이라고 주장하는 박 대통령 측의 논리와도 맞아떨어진다. 》


○ 박 대통령과 안 전 수석에게 공 넘긴 최순실

 

최 씨는 재단 모금과 인사 개입 등 국정 농단과 관련된 혐의에 관한 책임을 박 대통령과 안 전 수석 쪽으로 떠밀었다. 공무원이 아닌 최 씨에게 공무원이 주체인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실행자 격인 박 대통령이나 안 전 수석과의 공모가 인정돼야 하는데 이들과의 3각 공모 자체를 부인함으로써 검찰의 공소사실 ‘전제’를 흔들겠다는 전략이다.

 최 씨가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입장을 취한 것은 탄핵심판 중인 박 대통령에게도 불리하지 않다. 박 대통령은 16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최 씨가 개인적 이익을 추구했더라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 “최 씨와 어떤 관련이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들어주지 않았을 것” 등의 주장을 펼치며 최 씨와의 거리두기에 나섰다.

 최 씨가 본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될 것을 알면서도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없는 공판준비기일에 수의를 입고 나온 것도 재판부에 적극적인 소명 의지를 보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씨 측 변호인은 검찰의 강압수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공모자로 지목된 최 씨 스스로가 박 대통령과의 공모를 적극 부인함으로써 검찰의 공소사실을 상당 부분 참조해 작성된 국회의 탄핵 사유를 흔드는 효과도 있다. 최 씨 등 피고인들은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거부하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의 허점을 파고들어 반전을 모색하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 안 전 수석 “비선 실세 존재 의심하고 문의”

 안 전 수석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정 전 비서관의 응답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최 씨의 영향력을 부정한 것도 대통령 탄핵심판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안 전 수석 스스로 최 씨의 영향력을 일부라도 시인하게 되면 ‘최 씨에게 이용당한 피해자’ 입장에서 탄핵심판 변론에 임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입장과 배치될 수 있다.

 안 전 수석 측은 이날 공판에서 “정 전 비서관에게 ‘비선 실세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절대 없다’고 했다”며 “안 전 수석은 그 말을 믿고 대통령 지시에 따라 연락했다”라고 말했다. 최 씨를 단지 정윤회 씨 부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 전 수석이 검찰에 제출한 다이어리에 대통령의 지시 내용은 상세하게 적힌 반면 최 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는 점도 최 씨의 모르쇠 전략과 맞아떨어진다. 최 씨와의 연결고리만 부인하면 박 대통령의 정당한 직무 집행 논리와 어긋나는 사실이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재단 모금과 관련해 “안 전 수석에게 문화 융성 등 좋은 취지로 협조를 받으라고 지시했을 뿐 위법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라거나 “참모진이 대통령의 발언 취지를 오해해 과도한 직무 집행이 이뤄졌을 수 있다”라며 안 전 수석과도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 피고인 8명 중 정호성만 혐의 인정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은 정 전 비서관은 변호인을 통해 최 씨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죄의 법정형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공범들의 다른 혐의에 비해 처벌이 가벼운 편이기 때문에 초기에 혐의를 인정해 재판부의 선처를 이끌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 전 비서관의 변호인은 “기밀 누설 혐의에 대해서 자백하는 취지로 조사를 받았다”면서 “대체로 대통령 뜻을 받들어서 했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은 이날 재판에서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문화계 황태자로 불렸던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측 변호인은 차 씨가 운영했던 회사 자금 횡령 등 개인 비리 혐의만 인정하고 KT 인사 개입과 포스코 계열 광고업체 인수 시도 등 국정 농단 관련 혐의는 부인했다. 차 씨의 측근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과 김홍탁 플레이그라운드 대표 등 4명도 검찰의 공소사실 전부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29일 2회 공판준비기일을 열기로 했다. 이날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의 재판도 열릴 예정이다.

신동진 shine@donga.com·권오혁·허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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