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서울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소속
나도 2007년부터 참여해서 8∼10개국에서 온 이주여성들과 같이 활동하게 되었다. 매달 ‘해피 스타트’라는, 새로 입국한 이주여성들에게 행정적인 의무교육을 할 때 선배들이 앞에 나가서 경험담도 말해주고 환영의 합창도 했다. 이주여성들이 한국어로 통하기 때문에 항상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밝고 상냥한 분위기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민원봉사도 하고, 보육원이나 양로원에 위문방문도 했었다.
솔직히 그 전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자주 만나게 되니 인간으로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확인도 되고, 반면 나라마다 얼마나 다양한 풍습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일본인인 나도 한국에서 연장자에 대한 예의가 남다른 것을 봐서 놀라운 일이 자주 있었다. 일본에서는 길 안내는 정말로 친절하게 거의 목적지 가까이까지 안내하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감동받은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그렇지만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자리 양보는 거의 안 한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일본에 갔을 때 다리가 아프셔서 힘들어하셨는데 아무도 양보를 안 했다. 그 이야기를 친정어머니에게 하니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피곤하니까”라는 말이 돌아와서 놀랐다. 일본에서는 나이 들면 약자로 생각하고 “늙으면 자식 따라가라”는 속담이 있듯 집안에서의 권력도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가정 내에 질서가 잘 잡혀 있다.
나는 외국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이 궁금해서 다문화뉴스의 기자를 하면서 ‘지구촌 이웃’이라는 코너를 만들고 취재를 시작했다. 모국에서의 생활과 모국 문화 소개, 그리고 한국 생활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결혼한 이민자들의 감정을 느끼게 됐다. 베트남에서 온 사람은 처음에 남편이 출근하면 혼자 나가기가 무서워서 3개월 동안 집 안에만 있었는데 눈이 내리는 것을 생전 처음으로 보고 신기한 나머지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남편과 연애 시절 오토바이 타고 데이트하고 강가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진한 베트남 커피향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사람은 모국에서는 좋은 직장에서 근무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공장에선 월급을 안 주는 경우가 많아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분노가 폭발해 노동부에 찾아가 합법적인 대우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러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 다문화 관련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순간 분노를 느끼고 오기가 생겨서 분발하게 될 때가 있다.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다 지금은 다문화 단체의 대표가 되어 라디오 프로에서 활약 중인 스리랑카 이주여성, 악착같이 일해 남편의 빚을 갚고 지금은 방송통신대를 다니고 있는 베트남 여성…. 타지에서 자아가 싹트고 자신의 생활을 개척해나가는 이주여성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그들의 삶의 연장선에 한국의 밝은 미래가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