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번진 AI 후폭풍]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에서 창궐하면서 ‘달걀 파동’이 현실화되고 있다. AI 발생 인근 농가의 달걀 출하가 금지되고, 마트에서 달걀 판매도 제한하는 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가금류 도살처분 규모는 불과 한 달 만에 역대 최대 규모인 2000만 마리(도살처분 예정 포함)를 넘어섰다.
○ 달걀 출하 중단…AI 피해 5900억 원 추정
롯데마트는 대형마트 3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20일부터 달걀 판매 수량을 1인당 1판(30알)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현재 롯데마트에 들어오는 달걀 공급량은 평소의 60% 수준으로 줄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제과점 등 달걀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상인들이 기존 거래처로부터 달걀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하면서 대형마트에서 달걀을 사재기할 우려가 커져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달걀을 재료로 쓰는 제빵 및 제과업체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이 우려되는 곳은 제빵업체들이다. 한 프랜차이즈 제빵업체 관계자는 “기존 거래처들을 통해 일단 연말까지는 필요한 달걀을 확보한 상태지만 달걀 출하가 전면 중단된다면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년보다 훨씬 빠른 AI 확산 속도 때문에 경제적 피해도 급속하게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AI로 인한 가금류 도살처분 규모는 19일 2000만 마리(도살처분 예정 포함)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2014, 2015년 2년 동안 발생한 AI로 총 1937만 마리를 도살처분한 역대 최다 기록을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갈아 치운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0만 마리 감염(감염률 12.1%) 때의 직·간접 경제 피해 규모는 5958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서울도 고병원성 AI의 가시권에 들었다. 서울시는 17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폐사한 황새 2마리를 국립환경과학원에 맡겨 고병원성 AI 여부를 검사한 결과 H5 양성으로 판정됐다고 19일 밝혔다. 서울대공원 개장 이래 전시 조류에서 AI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는 전체 조류 1200여 마리의 분변 검사를 의뢰해 양성 결과가 나오면 모두 도살처분할 계획이다. 단, 국제적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은 농식품부와 환경부 문화재청 등과 협의해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서울대공원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17일부터 임시 휴원에 들어갔다.
○ AI 한국 토착화도 우려
매년 AI가 되풀이되면서 사실상 AI가 한국에 토착화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11월부터 전국에 퍼지고 있는 H5N6형에 더해 2014년 큰 피해를 가져왔던 H5N8형까지 추가로 발견되면서 ‘토착설’에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농식품부는 12일 경기 안성천에서 채취한 야생조류의 분변 시료에서 검출된 H5N8형 바이러스가 고병원성으로 최종 확진됐다고 19일 밝혔다. 두 가지 유형의 AI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동시에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H5N6형 바이러스와 중국에서 발견된 H5N6형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이 100%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올해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넘어왔다면 유전자형이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10월에는 2014년 전 세계에 큰 피해를 입힌 H5N8형 바이러스의 시작점이 한국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에 게재되기도 했다. 한국이 외래 AI 바이러스의 피해를 입는다는 통념과 반대로, 한국에서 날아간 철새들이 한국의 바이러스를 다른 나라에 퍼뜨린다는 것이다.
반면 AI 토착설이 섣부른 판단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H5N8형 바이러스는 중국이나 몽골 등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얼마든지 철새를 통해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손가인·한우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