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는 조원동 전 청와대 전 경제수석.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고 탄핵심판이 시작됐다. 피의자 박근혜에 대한 검찰 수사도 특검으로 이첩됐다. 변기나 수도꼭지부터 매트리스까지, 아니 샴푸까지도 본래 쓰던 물건을 써야만 맘이 편해지는 ‘사생활이 고려되어야 할 여성’은 참모 및 지인들과 함께 ‘공범’으로 추락했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며 추앙 받고, 매번 새 옷을 입고 해외에 나가 호텔 객실에 조명등 두 개와 스크린 형태의 장막을 설치해 대낮처럼 밝게 한 후에만 다듬었던 얼굴과 머리는, 이제 미용시술의 흔적인 피멍과 더불어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사회가 낳은 ‘우등생’들의 비틀린 심상(心象)을 본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네가 출세해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을 삶의 진리로 알고 살아온 이들, 서울대 가고 고시 붙으면 열쇠 세 개 들고 찾아오는 처가를 골라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을 자신에 대한 기대와 칭송으로만 알고 뿌듯해 하던 이들, 그러니 윗분의 뜻에 거스르지 않고 어떻게든 지시사항을 이행하는 것이 공직자의 최고 덕목이라고 생각하던 이들의 민낯은 오늘의 비극을 마주하고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검사 윤석열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 마디로 좌천을 거듭했고 국정의 비선을 걷어내려던 조응천은 구속 직전까지 몰렸지만, 우병우는 수직 상승으로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세칭 ‘한국사회의 엘리트’들은 그런 그들을 보며 그간 고수해 온 자신의 인생관이 얼마나 옳은 것이었는지 자부하며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관가에서야 예전부터 ‘쪽팔림은 순간이고 자리는 영원한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일탈(?)과 저항으로 얻은 국민적 신망이야 신기루 같은 것일 뿐, 돈도 권력도 생기지 않으니 그저 허명에 불과한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모름지기 눈앞에 찾아 온 기회를 놓친다는 건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바보 같은 일이니 윗분의 뜻은 그저 어떻게든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야 할 일일 뿐, 결코 비판이나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음 한 구석의 찜찜함은 훗날 더 큰 자리로 충분히 보상되면 그만일 뿐, 언제 윗사람에게 대들어 좋은 자리 얻은 사람 본 적이 있었던가.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그러니 기왕에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나서 충성하는 것이 그분과 나, 내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서도 모두 좋은 일이라는 믿음, 그것이 오늘날 조원동을 그토록 억울하게 만들었다. 그저 아쉬운 게 있다면 김기춘에 필적하는 노회함과 법률지식을 갖추지 못해 누추하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는 것 뿐, 특검에 불려가 우병우와 더불어 윤석열 앞에 조사 받고 조응천으로부터 질타당하는 운명은 여전히 힘겨울 것이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방송문화진흥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