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단청복원 쓰일 천연안료, 포항 산업단지 조성 현장서 무더기 발견

굴착기에 깎인 녹색 뇌록 암반 8일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공사현장. 암반 굴착으로 드러난 현무암 지대 위로 마치 붓으로 그은 것처럼 선명한 녹색 띠가 보인다. 조선시대 단청 등에 녹색 염료로 쓰인 뇌록이다. 포항=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일 문화재청과 포항시에 따르면 경북대 암석광물학 연구실이 포항시 장기면과 구룡포읍 일대에서 뇌록 노두(露頭·지하에 매장된 광맥이 지표에 노출된 것) 4곳 등 총 6곳의 뇌록 산지를 발견했다. 이 가운데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공사 현장이 있는 구룡포읍 광정산 동남부 계곡에 가장 많은 양의 뇌록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201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포항 뇌성산 뇌록 산지’에서 2km가량 떨어져 있다.
뇌록은 운모류 광물로 조선시대 궁궐과 사찰의 단청, 그림에 녹색 안료로 사용됐다. 뇌록은 귀해서 예부터 국가가 나서 생산을 통제했다. 실제 영건도감의궤(營建都監儀軌)에 따르면 1805년 2월 창덕궁 인정전을 중수하면서 경상도 관찰사에게 “장기현(현 포항시 장기면)에서 나는 뇌록 20두(斗)를 조달하라”는 왕명이 떨어졌다. 실제로 뇌성산 산지에는 약 15m 깊이의 조선시대 갱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포항 국가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성인 팔뚝 크기의 뇌록 원석. 반질반질한 표면에 온통 녹색을 띠고 있어 마치 영화 슈퍼맨에 나오는 신비의 광물질 ‘크립토나이트’를 연상시킨다. 오른쪽 사진은 2013년 떨어져 나간 숭례문 단청. 포항=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경북대 연구팀은 올 초 현지 조사에 착수해 3월 연구용역 보고서를 문화재청과 포항시에 제출했다. 이어 연구팀은 5월 최종 보고회에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 관계자들에게 “시추 등 정밀 조사를 통해 뇌록 매장량과 분포 지역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라며 지금껏 정밀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도로를 내기 위한 암반 굴착이 진행되면서 파괴된 뇌록 암석들이 공사 현장 곳곳에 굴러다니고 있다.
실제 8일 찾은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공사 현장에서는 도로를 내기 위한 암반 폭파 작업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공사장 곳곳에 어른 팔뚝만 한 것부터 손가락만 한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뇌록 원석들이 특유의 초록빛을 띤 채 널려 있었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공사장에서 뇌록 원석 1t을 천연 안료 연구 목적으로 수거해 갔다.
경북대 연구팀은 3월 보고서에서 “광정산 일대 뇌록 산지는 산업단지 조성 공사에 따라 상당한 훼손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보존 조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정확한 뇌록 매장 보존 구역 설정을 위해 지표 조사는 물론이고 시추와 지구물리탐사, 지표투과레이더(GPR) 등 정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새로 발견된 뇌록 산지는 기존 산지와 같은 역사성이 없어 보존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문화재위에서 제기됐다”라며 “단순히 단청 보수를 위해 뇌록을 수집할 거라면 굳이 정밀 조사가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블루밸리 산업단지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뇌록이 많이 나오는 구간에 한해 성토 작업을 하지 말고 관람 덱(deck)을 설치하라는 문화재위원회 권고만 전달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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