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최후수단 ‘AI 항원뱅크’ 추진
텅 빈 계란 판매대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이 품귀현상을 보이는 가운데 20일 광주 서구의 한 대형마트 계란판매대가 품절 안내문만 걸린 채 텅 비어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0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충북 음성군의 한 동물복지농장에서 AI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산란계(알을 낳는 닭) 1만3000마리를 키우는 이 농장에서는 닭 20여 마리가 폐사했고, 간이검사에서 AI 양성 반응이 나왔다. 동물복지농장은 그동안 일반 농장에 비해 사육여건이 좋아 상대적으로 AI 감염 위험이 낮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또 AI 발생 농가와 인접해 예방적으로 도살 처분된 적은 있어도 동물복지농장에서 직접 AI에 감염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동물복지농장은 2012년 도입됐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있다.
이처럼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백신 ‘항원뱅크’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AI 백신 개발 방침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항원뱅크는 백신 완제품의 재료인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냉동 보관하는 역할을 한다. 항원뱅크가 갖춰지면 2주 만에 백신을 만들 수 있다. 비용은 닭이나 오리 1마리에 60원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백신을 개발하더라도 사용하는 것에는 신중하겠다는 태도다. 인체 감염 가능성과 경제적 피해 때문이다. 백신을 쓰면 바이러스가 가금류 체내에 잠복해 변종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고, 사람이 AI에 걸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또 백신을 사용해 AI 상시발생국이 되면 ‘AI 청정국 지위’가 상실된다. 가금류 수출에 차질이 생긴다는 뜻이다.
한편 이날 질병관리본부는 도살 처분 참여자 등 AI에 노출된 고위험군이 9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은 가금류 도살 처분 작업 참여자와 농민 등 9183명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이와 관련해 H5N6의 특성상 사람에게 감염될 확률은 낮다고 설명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또 날계란을 다룰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AI 감염 닭은 알을 낳지 못하지만 계란 껍데기에 바이러스가 묻을 수 있어서다. 다만 계란은 대부분 세척과 소독 과정을 거쳐 유통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바이러스 묻은 계란을 구입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질병관리본부의 설명이다.
:: 항원 뱅크 ::
손가인 gain@donga.com·김윤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