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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마리 도살해놓고 뒤늦게 ‘백신 카드’

입력 | 2016-12-21 03:00:00

정부 최후수단 ‘AI 항원뱅크’ 추진




텅 빈 계란 판매대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이 품귀현상을 보이는 가운데 20일 광주 서구의 한 대형마트 계란판매대가 품절 안내문만 걸린 채 텅 비어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청정 지역으로 기대됐던 ‘동물복지농장’마저도 뚫었을 가능성이 제기돼 정부에 초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이에 따라 AI 백신을 만드는 등 추가 대책을 검토하고 나섰다. 하지만 백신 개발에서 접종까지 4개월 가까이 시간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뒤늦은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충북 음성군의 한 동물복지농장에서 AI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산란계(알을 낳는 닭) 1만3000마리를 키우는 이 농장에서는 닭 20여 마리가 폐사했고, 간이검사에서 AI 양성 반응이 나왔다. 동물복지농장은 그동안 일반 농장에 비해 사육여건이 좋아 상대적으로 AI 감염 위험이 낮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또 AI 발생 농가와 인접해 예방적으로 도살 처분된 적은 있어도 동물복지농장에서 직접 AI에 감염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동물복지농장은 2012년 도입됐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있다.

 이처럼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백신 ‘항원뱅크’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AI 백신 개발 방침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항원뱅크는 백신 완제품의 재료인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냉동 보관하는 역할을 한다. 항원뱅크가 갖춰지면 2주 만에 백신을 만들 수 있다. 비용은 닭이나 오리 1마리에 60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올겨울에는 백신 사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 검역본부장은 “H5N6형은 올해 새로 유입돼 백신 개발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개발에 들어가도 접종은 일러야 내년 4월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백신 종독주(seed bank·백신 제조용 바이러스 후보군)를 구축해 뒀다고 하지만 H5N6형이 아닌 H5N1·H5N8형만 확보돼 있다. 정부 대응이 너무 늦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백신을 개발하더라도 사용하는 것에는 신중하겠다는 태도다. 인체 감염 가능성과 경제적 피해 때문이다. 백신을 쓰면 바이러스가 가금류 체내에 잠복해 변종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고, 사람이 AI에 걸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또 백신을 사용해 AI 상시발생국이 되면 ‘AI 청정국 지위’가 상실된다. 가금류 수출에 차질이 생긴다는 뜻이다.

 한편 이날 질병관리본부는 도살 처분 참여자 등 AI에 노출된 고위험군이 9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은 가금류 도살 처분 작업 참여자와 농민 등 9183명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이와 관련해 H5N6의 특성상 사람에게 감염될 확률은 낮다고 설명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또 날계란을 다룰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AI 감염 닭은 알을 낳지 못하지만 계란 껍데기에 바이러스가 묻을 수 있어서다. 다만 계란은 대부분 세척과 소독 과정을 거쳐 유통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바이러스 묻은 계란을 구입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질병관리본부의 설명이다.
 


:: 항원 뱅크 ::

백신 완제품을 만들기 위한 전 단계. 백신 제조에 필요한 바이러스를 대량 생산해 냉동 보관해 놓은 상태다. 백신은 종란에 항원뱅크의 바이러스를 접종·양성한 후 기름과 섞어 만든다.
 

손가인 gain@donga.com·김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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