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발타자르 데너가 그린 헨델 초상화(1726∼1728년). 사진 출처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그림 2〉 2015년에 연주된 ‘메시아’ 관련 포스터들
헨델의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죽음과 부활, 복음 전파 등을 노래한 헨델의 대표 작품이자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오라토리오(oratorio)입니다. 바로크시대에 탄생한 오라토리오는 신화와 역사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는 오페라(opera)와 달리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종교적인 내용의 음악극입니다.
○ 바흐와 달리 생전에 부와 명성을 얻은 헨델
○ 대작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탄생
시민권을 얻은 영국 런던에서 귀족들의 후원 속에 이탈리아식 화려한 오페라를 발표해 승승장구하던 헨델은 자신이 직접 오페라단을 운영했는데, 인기 있는 성악가들의 천문학적인 출연료와 여가수들의 변덕 등으로 항상 고민이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새로운 사회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영국의 시민계급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 오페라보다는 귀족이나 정치인들을 풍자한 영어로 된 가벼운 오페라(발라드 오페라)에 더 많은 호응을 보내면서 헨델의 오페라단은 결국 파산하게 됩니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대본작가인 친구 제넨스(Charles Jennens)가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 쓴 오라토리오 대본을 이미 받아두었던 헨델은 런던의 자택에서 바로 작곡에 들어가 24일 만에 총 3부로 구성된 대작 오라토리오를 완성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헨델은 끼니도 잊고 작곡에 몰두했다고 하는데, 총 259쪽의 악보와 2시간이 넘는 대곡을 이렇게 순식간에 작곡했다는 것은 헨델 스스로도 “신께서 나를 찾아오셨던 것만 같다”고 말한 것처럼 정말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무대 제작부터 의상까지 많은 제작비가 드는 오페라에 비해 오라토리오는 성경의 내용으로 극(劇)적인 흐름도 있으면서 독창, 합창, 오케스트라 등 오페라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게 구성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헨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르이기도 했답니다.
영국의 국가적 행사의 공식 홍보대사이자 대표적인 명사였던 헨델은 ‘메시아’ 외에도 ‘왕궁의 불꽃놀이’ ‘수상음악’ 등 왕실을 위한 음악을 작곡해 왕실과 국가를 빛낸 위인들만 모셔져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시신이 안치될 정도로 영국 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그림 3>
〈그림 3〉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헨델 조각상.사진 출처 웨스트민스터 사원
간혹 ‘음악의 아버지’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본보 10월 19일자 A28면 참조)와 오늘 알아본 ‘음악의 어머니’ 헨델을 부부로 생각하고, 헨델을 여성 작곡가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바흐와 헨델은 같은 해 독일에서 태어났다는 점과 같은 안과의사의 수술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작곡가랍니다. 서로에 관해 알고는 있었지만 생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바흐와 헨델이 같은 의사의 수술 후에 사망했다는 사실은 세상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해, TV에서 종종 다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백내장에 걸린 바흐는 훌륭한 의사를 수소문하다 영국의 안과의사 존 테일러(John Taylor·1703∼1770?)에게 두 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는데요. 두 번째 수술 후 완전히 실명하고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말년의 헨델도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고생하다가 존 테일러에게 자신의 눈을 맡기게 되는데, 헨델 역시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합니다.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은 병으로, 같은 의사의 진료 후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김선향 선화예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