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그러나 모든 세부적인 사항까지 법률로 규정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적절하지도 않습니다. 법을 제정하는 곳은 입법부, 즉 국회지만 실제로 법을 집행하는 곳은 행정부이므로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세세한 항목들은 법률의 구체적인 위임을 받아 행정부의 명령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이를 법률의 위임이라 하고, 법률의 위임을 받아 제정된 명령은 ‘법규명령(法規命令)’으로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규율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달리 헌법적 근거나 법률의 위임 없이 제정하는 행정규칙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어 국민을 직접 규율할 수 없다는 점에서 법규명령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헌법적 근거인 동시에 한계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대통령령과 행정 각부의 부령은 입법자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구체적인 위임을 받은 사항에 한해서만 국민을 직접 규율하는 법규명령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률의 위임도 없이 시행령에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면 이는 국민을 구속하는 법규명령으로 볼 수 없고, 이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부과된 과징금 처분에 대하여 해당 지침의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어 시행된 시기(2014년 6월 25일) 이전의 위반 행위는 위법으로 볼 수 없다면서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이처럼 위법하게 과징금이 부과되고, 이를 다투는 과정에서 국민은 상당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과징금을 그대로 납부한 국민 역시 억울한 마음은 같습니다. 이처럼 법치주의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깊숙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