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세계 랭킹 1위 등극 박상영
최근 사진에 취미를 붙여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를 산 박상영은 인터뷰 내내 사진기자에게 사진 잘 찍는 법을 물었다. 그는 “일본에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는데 휴가를 받으면 일본에 여행 가서 사진을 많이 찍고 싶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펜싱 국가대표 박상영(21·한국체대)과 인터뷰하는 내내 언제 어디선가 읽은 표현이 계속 떠올랐다. “할 수 있다”라는 평범한 표현은 박상영을 만나면서 전 국민적인 주문(呪文)으로 바뀌었다. 그는 ‘놀다’라는 동사에도 새 뜻을 더했다. 그에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제일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가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금메달을 따내며 정말 잘 놀자 학창 시절 윤리 시간에나 들어봤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는 표현도 인기를 끌었다. 두바이 초청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박상영을 19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먼저 국제펜싱연맹(FIE)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걸 축하한다. (리우 올림픽 시작 전 21위였던 그는 지난달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하며 생애 처음으로 1위가 됐다.)
―그때도 “할 수 있다”라고 되뇌었나.
“물론이다. 그 말이 이렇게 유행할 줄 나도 몰랐다. 리우 올림픽 결승전 때 관중석에서 남자 사브르 (이효근) 코치님께서 ‘할 수 있다’고 외치시는 소리가 들려서 따라 했던 거다. 물론 그 전에도 자주 쓰던 말이기는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계속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때는 ‘너 한 번만 그 얘기 더 하면 가만 안 둔다’고 농담으로 협박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정도가 됐다.”
―금메달을 따고 나서 제일 달라진 건 뭔가.
“주변에서 구박이 늘었다는 거? 제가 원래 펜싱 빼고는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운동 말고는 칭찬을 들어본 적도 별로 없다. 예전에는 좀 허술하게 행동해도 주변에서 익숙한 듯 그냥 넘기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쟤는 펜싱은 잘하는데…’로 시작하는 구박을 많이 듣게 됐다.(웃음)”
―그래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명해지지 않았나.
“맞다. 광고도 찍고, 프로야구 시구도 했다. 최근 몇 달은 정말 인생에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얻은 이름값을 뭔가 좋은 일을 위해 쓰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일단은 펜싱을 널리 알리는 게 목표다. 펜싱을 정말 이만큼 사랑하고 그래서 그만큼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얻은 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제일 재미있다. 특히 에페는 더욱 그렇다. 선수들끼리 ‘그날 몸(컨디션) 좋은 선수가 이긴다’는 말을 많이 한다. 올림픽 때는 내가 몸이 정말 좋았다. 사람들이 다들 너무 잘해 주고, 공짜 햄버거 먹으러 가면 눈앞에 우사인 볼트도 있고, 선수촌 생활이 정말 재미있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랭킹 1위지만) 제가 질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노력을 게을리할 수가 없다.”
8월 9일(현지 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는 박상영.동아일보DB
―‘즐긴다’는 말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다. ‘죽을힘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데 즐기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이다.
“즐기기 위해서는 물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행을 갈 때도 현지에 도착해서 즐기려면 먼저 계획을 철저하게 짜야 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연습 자체도 내가 좀 더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면서 즐겨야 한다.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제 또래 친구들이 많을 거다. 그런데 너무 고민을 많이 하는 것 때문에 잘 못할 때가 많다. ‘지금’ ‘여기’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성장하고 결국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