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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술로 망하는 사람

입력 | 2016-12-21 03:00:00


맨 정신에 취한 사람을 보면
이전에 나의 취한 모습을
남들이 비웃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醒而見醉者知有人笑我之醉者
(성이견취자 지유인소아지취자)

―남공철, ‘금릉집(金陵集)’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술이다. 좋은 일이 생겨도 찾고, 나쁜 일이 생겨도 찾는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술잔을 기울이고, 술자리를 통해 그저 아는 사람이 친한 친구로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술은 꼭 다른 사람과 함께 마실 필요도 없다. 밝은 달을 벗하며 마시기고 하고, 나의 그림자와 짝하여 마시기도 한다. “석 잔을 마시면 도에 통달하고, 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는 등 술에 대한 예찬의 말을 들으면 굳이 좋은 안주가 아니더라도 절로 술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술을 좀 마신다는 사람 중에 한 번이라도 술을 끊겠다고 다짐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신이 다짐하지 않았더라도 주위로부터 그러한 압박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술로 인해 가정이 파탄난 사람, 내 목숨뿐 아니라 남의 목숨까지 앗아간 사람, 쌓아 왔던 부와 명예를 송두리째 날려 버린 사람…. 열거한 사람들은 굳이 애써 찾아볼 것도 없다.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거나 TV 뉴스를 보면 흔히 등장하고 있으니.

 맨 정신으로 술 취한 사람의 행동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혐오감을 주는 행동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비웃음이 절로 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과거 언젠가의 나의 모습이었다면 과연 마음 편히 비웃을 수 있을까.

 동양에서는 술의 시초를 하(夏)나라의 우(禹)임금 때라고 한다. 의적(儀狄)이 처음 술을 만들어 우임금에게 바쳤는데, 우임금이 그 술을 맛보고는 맛에 감탄하였지만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게 될 것이다”라고 경계하며 의적을 멀리하였다고 한다. 나라뿐 아니라 내 몸을 망치는 데에도 이르지 않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남공철(南公轍·1760∼1840)의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금릉(金陵)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 이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정조 시대에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히는 등 크게 인정을 받았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