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한 미래학자의 오랜 통찰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국지전이나 소규모 틈새전쟁, 아슬아슬한 우주전쟁의 낌새, 무인 원격조종과 로봇전쟁, 스마트 무기와 신종 테러 등의 소식을 통해 눈앞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미래전(未來戰)’이라고 하는 새로운 전쟁 양상을 출현시켜 화약 냄새 진하던 전장의 모습을 바꾸어 버렸다.
미래 핵심 전력 체계를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용어인 ‘C4ISR(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 감시 및 정찰)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이 ‘무색무취의 전쟁’에는 아군도 적군도, 우방도 적국도 없다. 각국에서 ‘지식무사’ ‘정보무사’를 전략적으로 양성하고 있는 이유다.
농가에서 AI 의심신고가 들어오면 바이러스 혈청형 간이검사 및 확진검사를 통해 해당 가금류의 감염 여부를 확진하고, 이어 결과에 따라 해당 축사를 폐쇄 및 도살처분 조치한다. 일정 반경 이내 축사의 가금류 또한 함께 도살처분된다. 이 과정에서 농장 종사자들과 도살처분 참여자들의 인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하거나 항바이러스제를 복용시킨다.
조류 간 전염력이 높아 농장에 큰 피해를 주는 데다 동물-인간 장벽을 넘어 인체에 감염되는 상황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단기간에 집중된다. 결코 쉽지 않은 전쟁이다. 농축산 담당과 외에도 대책반에 포함되는 방역, 행정, 예방접종, 도로교통, 환경보호 등 협력 부서와, 24시간 비상 근무팀도 고생한다. 특히 AI 바이러스는 변이가 심해 백신 개발도 어렵고, 감염 경로 또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어서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적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는 마치 거대한 철새 떼가 공중에서 바이러스 폭탄을 투하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철새는 죄가 없다. 과거 빅데이터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사람과 교통수단을 통한 감염의 비중이 더 크다고 한다. 앞으로도 산발적으로 이어질 이 지난한 싸움에 동선 차단과 방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애초에 적을 만들지 않으면 어떨까.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고리의 보완, 감염원과의 지속 가능한 공생이 그것이다. 백신 항원뱅크 설립과 같이 과학기술의 힘을 빌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양계·축산환경 개선과 위생원칙 준수라는, 근본적이지만 실행이 어려운 해답을 이미 알고 있다.
토플러가 ‘제3의 전쟁형’에 대응할 ‘제3의 평화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듯이 좀 더 새롭고 근본적이며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때까지 버텨 주시라. 국경을 넘나드는 바이러스와의 평화로운 공생이 될 때까지.
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