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회의 Outsight/ Infight
9살의 트랜스젠더 에이버리 잭슨을 표지에 내세운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7년 1월호.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을 선언한 9살의 트랜스젠더 에이버리 잭슨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2017년 1월호 표지를 장식한 건 역사적인 사건이다. 제호도 굉장하다. ‘젠더 레볼루션(성 혁명)’. 내셔널 지오그래픽 정도 되는 매체가 갑자기 서슬 퍼런 칼을 빼 들었으니 당연히 반응은 폭발적이다. 불과 이틀 사이에 페이스북 해당 포스트에 ‘싫어요’와 ‘좋아요’를 합친 의사표시가 3만1000개 달렸고, 30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다행히도 댓글을 단 대부분의 사람은 에이버리와 그의 가족을 응원한다. 특히 트랜스젠더 선배들이 ‘에이버리는 좋은 부모를 만났고, 그 덕에 끔찍한 청소년기를 겪지 않아 행복하겠다’며 열렬하게 응원한다. 물론 혐오와 오지랖이 가득 찬 댓글도 많다. 가장 많은 유형은 ‘토끼’나 ‘고양이’를 예로 든 댓글이다. “애가 토끼가 되고 싶다고 해서 성형수술로 귀를 늘이거나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줄 건가요?”라는 이상한 비유.
생각을 좀 해보자. 남자애가 자신이 여자라고 커밍아웃했다면 정상적인 부모가 가장 먼저 뭘 했을까? 당연히 이들 부모는 아동 심리학자를 찾았고, 검증을 거쳐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 진단을 받았다. 성별 위화감 진단의 조건은 ‘강하고, 일관성 있고, 끈질기게’ 자신이 다른 성이라고 느끼는 경우다. 에이버리는 4살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난 여자”라고 선언하며 커밍아웃했다. 그 후 5년 동안 꾸준하게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만약 어떤 애가 5년 동안 꾸준하게 “사실 난 토끼”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의학이 연구해봐야 할 전혀 다른 과제다.
또 다른 댓글들을 보면 9살 트랜스젠더의 인생에 관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성전환자에 대해 무관심한지를 살필 수 있다. “얘네 엄마 아빠는 20년이 지나면 아들 인생을 자기들이 망쳤다는 걸 깨달을 거야. 사춘기가 지나면 여자가 좋아질 테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차이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내가 나를 어떤 성으로 느끼는지(성 정체성)와 내가 어떤 성을 좋아하는지(성적 지향)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여자를 좋아한다고 남자가 되는 게 아니고, 남자를 좋아한다고 여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9살의 트랜스젠더는 절대 비가역적인 의학 시술을 받지 않는다. 에이버리 역시 호르몬 요법이나 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았다. 외과적 수술을 끝내야 트랜스젠더라는 생각은 오해다. 성별 위화감의 정도는 사람마다 달라서 ‘외과적 수술 등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전환한 사람도 있고, 호르몬 등 몇 가지 조치만을 받은 사람도 있으며, 아무런 조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스펙트럼은 흑백으로 나뉘지 않고, 주황과 진홍과 다홍과 빨강만큼 제각각 다양하다.
가끔 어려운 문제에 접근할 때면, 비아냥거리기보다는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주요하다. 자, 만약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나는 남자”라고 커밍아웃한다면 부모로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20살이 될 때까지 좀 두고 보자는 답변은 매우 위험하다. 에이버리의 아빠인 톰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자신들이 에이버리의 성별 정체성을 지지한 이유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그는 “트랜스젠더 아동의 경우 십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50%가 자살을 시도하며, 그중 다수가 자살에 성공한다”는 통계를 발견하고 무너졌다.
박세회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어쩌면 이게 미국의 얘기라서 좀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처럼 성별 위화감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도 분명히 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차별을 겪은 성 소수자의 16.1%가 자해를 했고, 19.6%는 자살을 시도했다. 이 국내 조사는 성 소수자 2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그중 트랜스젠더의 비율은 고작 7.5%였으니 트랜스젠더만을 그 대상으로 조사했다면 수치는 미국의 통계에 가깝게 뛰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건 우리의 주변에도 분명 에이버리가 있다는 확연한 사실이다. 아무도 통계에 따로 잡지 않고, 일상에선 우리 눈에도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한국의 에이버리가 책가방을 쌀 때마다 한숨을 쉰다. 톰 잭슨은 앞선 밝힌 뉴욕 타임스의 에세이에서 ‘죽은 아들보다는 산 딸이 낫다는 마음’으로 에이버리의 성별 정체성을 지지했다고 고백했다. 이 솔직한 고백을 못 들은 척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박세회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rapidmove8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