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그르니에 ‘책의 맛’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체호프’로 불린다. 카뮈가 편집장으로 있던 ‘콩바’지에서 기자로 글쓰기를 시작해 50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해 온 그는 살아 있는 프랑스 문학의 초상이다. 동시대 작가들의 초상을 그린 ‘로맹 가리 읽기’나 ‘알베르 카뮈, 태양과 그늘’ 등에서 쓴 글은 꽤 익숙하다.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매일 아침 걷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생물학적 힘으로 글쓰기의 모터에 동력을 걸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숨쉬는 것처럼 일생 책을 읽고 글을 썼기에 가능할 것이다.
이 책에는 아홉 개의 주제로 글쓰기와 책에 관한 사색이 담겨 있다. 그가 ‘글쓰기’라는 언어의 숨을 골라 써내려간 자신의 전기와 같다. 그르니에는 말한다. “읽기는 글쓰기만큼이나 사생활에 속하는 행위다. 책 한 권 들고 혼자가 되는 시간,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페이지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참으로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혼란스러운 삶을 문득 이해할 것만 같다”고.
저자는 여러 매체와 미디어 속에서 힘을 잃고 떠도는 문학의 상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여러 글 속에서 인간도 함께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우리들의 고민과도 닿아 있다.
그는 문학작품이 가진 기다림의 결정들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들은 왜 그토록 기다림이라는 주제에 의미를 부여할까? 무엇에 대한 기다림이란 말인가.”
그는 기다림에 대한 성찰을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여겼다. 기다림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삶에 스밀 수 있다고, 그리고 쓰는 일의 기다림에 대해 다시 말한다. 무언가를 쓰기 위해 기다리는 일은 시간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책의 맛은 어쩌면 인간이 시간으로 만들어간, 미완성된 욕망의 맛인지도 모른다.
김경주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