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흥 논설위원
미-러가 실제로 핵전력 강화에 돌입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갈 개연성이 크다. 북한은 옳다구나 하고 핵 보유를 정당화할 것이고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는 좌초될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은 트럼프가 시사한 ‘핵무장 허용’이 과연 가능한지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은 아직은 먼 일이나 임박한 고민도 있다. 트럼프가 미군 철수까지 들먹이며 따졌던 미군 주둔 비용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아베 “한국 곤혹스러울 것”
일본엔 약 5만4000명의 미군이 85개 시설에 주둔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다. 일본은 올해 4월 시작한 회계연도에 미군기지에 대한 직접 지원 예산으로 1920억 엔(약 17억 달러)을 반영했다. 일본 방위예산은 약 5조 엔(약 450억 달러)이지만 미국이 아니라면 미국이 제공하는 수준의 항공모함, 무기 등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로 매년 4조2000억 엔을 더 써야 할 것이라는 게 일본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의 내년 국방예산은 40조3347억 원으로 북의 핵·미사일에 대처하기 위한 방위력 개선비는 12조1970억 원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올해 9400여억 원이지만 주한미군이 없다면 안보를 위해 지출해야 할 혈세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트럼프가 한국에 동맹으로서의 부담을 더 요구한다면 마지못해 끌려만 갈 것이 아니라 차제에 자주국방 능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의 협조와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더 낫다. 자위적 차원에서 핵잠수함을 도입하는 것 등에 제동을 걸지 말라고 당당히 요구하면 어떤가.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도 더는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
美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