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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바다·비·눈물이 되어 흐르는 시의 물줄기

입력 | 2016-12-24 03:00:00

◇감은 눈이 내 얼굴을/안태운 지음/116쪽·9000원·민음사




 ‘젖은 얼굴이 보이고 젖은 눈이 보이고 비가 오면 사람들은 눈부터 젖어 든다고 그는 말하게 되고 그러자 그건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드나들게 된다/얼굴의 물 안으로/얼굴의 물 밖으로.’(‘얼굴의 물’에서)

 이 시집에는 물이 흐른다. 시집 곳곳에 물이 있다. ‘고인 물은 멈추지 않고 있다. 잎이 떨어지고 벌레가 드나드는 탕으로 물이 모여 있다’(‘탕으로’), ‘연안으로 가 봅시다 연안으로 밀려오는 너를 보러 나는 연안으로 건너가 봅니다’(‘연안으로’), ‘동공이 당신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시간입니다 하루가 목욕하고 있습니다 비가 거리를 앗아 갈 때까지’(‘동공’) 등이 그렇다. 물은 탕으로, 비로, 바다로, 눈물로 변주된다.

 물은 형태도 없고 한계도 없다. 물의 무한함은 시인이 스스로 그어놓았던 한계를 가뿐히 넘도록 한다. 그의 시에서 ‘우리는 흐르는 자세를 지니게 되고’ ‘2월의 비를 맞으면서 너는 민담처럼 흩어져 간다’. 시인의 시에서 이렇게 흩어지고 흘러내리는 물의 이미지는 ‘너’와 ‘나’의 경계마저 무너뜨린다. ‘너는 내 얼굴을 찾고 있나 그러나 찾지 못했지’라며 방황하는 듯했던 시적 화자는 ‘너’가 부서져 나간 자리에 ‘내 몸을 이어 붙인다’. 이는 불화가 아니라 화해이고, 너와 나를 아우르는 물의 성취다.

 안태운 시인의 첫 시집이자 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이다. 수상작 발표 당시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 에너지와 확고한 시 세계를 이끌어가는 능숙한 전개가 돋보인다”란 평을 받았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