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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과거로 되돌아간 현대중공업 노조

입력 | 2016-12-26 03:00:00


주성원 산업부 차장

 조합원 4분의 3(76%)이 찬성했다니 놀랍다. 지난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근로자들이 내린 산별노조 전환 결정 이야기다.

 산별노조 전환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로 복귀하기 위한 수순이다. 노조 집행부는 회사가 진행 중인 6개사 분사(分社) 계획 등의 구조조정을 저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이런 주장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은 듯하다. 집행부는 사측의 분사 추진이 노조를 와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해왔다.

 결국 투쟁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민노총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금속노조에 재가입하면 12년 만에 다시 민노총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는 셈이다.

 금속노조는 2004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분신자살 사건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가 사측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며 제명을 결의했다. 민노총에 현대중공업 노조가 눈엣가시였을 때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한때 강성, 과격 노조의 대명사였다. 중장비를 몰고 울산시청에 난입하거나(1987년), 골리앗 크레인을 점거하고 농성(1990, 1994년)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랬던 노조가 1995년 이후 사측과의 임단협을 10년째 무분규로 타결했으니 민노총 조직으로 보면 ‘변절’도 이만한 변절이 없었을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사의 무분규 협상 타결은 이후로도 9년간 더 이어졌다. 이 기간 한국 조선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밀월(蜜月)은 좋은 시절까지만의 이야기였다. 글로벌 조선업 불황으로 현대중공업도 침체되면서 노사관계는 틀어졌다. 지난해 4분기(10∼12월)까지 회사는 이전 9개 분기 동안 적자였다. 그런데도 노조는 줄곧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강성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19년을 이어온 무분규 기록도 2014년 깨졌다.

 올해도 수주 가뭄에 시달리면서 회사의 앞날은 불투명하지만 노조는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은 물론이고 임금피크제 폐지와 조합원 100명 이상의 해외 연수까지 요구하고 있다. 사무직에 이어 생산직 희망퇴직까지 받은 회사의 제시안은 당연히 이에 못 미친다. 갈등이 심화된 배경이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수주 산업이다. 업황에 회사의 성쇠가 좌우되는 면이 많다. 그렇다고 해도 최근 몇 년간 한국 조선업이 겪은 침체를 단순히 외부 원인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무분별한 저가 수주 경쟁과 일부 기업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나태한 경영 감시와 정부의 판단 착오 등 여러 이유가 있다. 회사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는 조선사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도 한 이유다.

 수주 산업은 골이 깊은 만큼 산도 높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 조선업이 호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골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 순서다. 위기 극복에 동참하기보다는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과거로 되돌아간 현대중공업 노조가 과연 이 골짜기를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금속노조는 임단협 관련 파업뿐 아니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파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파업 같은 각종 정치 파업을 주도해온 단체다. 앞으로 현대중공업 노조가 이런 파업에까지 동원돼 본업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현대중공업이라는 개별 회사나 조선업이라는 개별 업종 차원의 걱정이 아니다. 현대중공업이 한국 경제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나오는 우려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