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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이 한줄]佛도 부러워한 ‘한국의 촛불 에너지’

입력 | 2016-12-26 03:00:00


《 1848년의 혁명을 ‘지식인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알맞다.―‘자본의 시대’(에릭 홉스봄·한길사·1998년) 》
 
  ‘무장하라 시민들이여…저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을 적시도록.’

 얼핏 군가처럼 들리는 이 노랫말은 프랑스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의 후렴구다. 이 곡은 원래 대혁명 기간인 1792년 작곡돼 마르세유 출신 의용군들의 파리 입성 때 불렸다. 이후 7월과 2월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며 군중의 노래로 각광받았다.

 과격한 가사의 노래가 국가로까지 정해진 것만으로도 혁명사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세계사에서 정치 엘리트들이 국왕을 끌어내린 사건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도시 평민과 농민 등 모든 사회계층이 힘을 모아 이룬 첫 번째 혁명은 프랑스혁명이었다는 게 이 나라 사람들의 큰 자랑이다.

 요즘 들어 프랑스 언론들이 한국의 촛불집회를 연일 조명하고 있다. 일간지 르몽드는 최근 광화문광장 시위에 100만 인파가 운집한 것을 두고 “시민들이 추위와 용감하게 맞서며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고 소개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운집한 촛불은 그들이 보기에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실제로 이만큼의 인파가 정치적 이슈에 자극 받아 광장으로 나서는 건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이 유례없이 다양해지면서 다중(多衆)이 한뜻으로 한목소리를 내면서 함께하기가 아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촛불의 끝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지금으로선 속단할 수 없다. 정국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마무리될 수도 있다. 역사학자 홉스봄이 ‘가장 성공하지 못한 혁명’으로 규정한, 독재의 부활로 귀결된 프랑스 2월 혁명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촛불은 앞으로 한국 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빛으로 남을 것이다. 촛불을 이끈 건 공동체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나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파편화된 사회이지만 그런 이웃을 수백만 명이나 갖고 있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이다. 촛불이 프랑스혁명만큼이나 중요한 역사로 남을 만한 이유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