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기록센터 본격 활동… 조사관들이 전하는 유린실태
북한인권법에 따라 설치된 통일부 소속 북한인권기록센터 내부 모습(위쪽 사진). 센터 조사관(아래쪽 사진 왼쪽)이 탈북 여성을 상대로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예비조사를 하고 있다. 신원 보호를 위해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북한인권기록센터 제공
올해 9월부터 시행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설치된 통일부 소속 북한인권기록센터의 A 조사관은 25일 탈북자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듣곤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신이 인신매매를 당한 줄도 모르는 탈북 여성들을 보면서 만약 내가 북에 태어났으면 이들과 다르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슬퍼진다”고 털어놨다.
○ 아픈 기억까지… 북한 인권침해 사례 낱낱이 기록
B 조사관은 “탈북 여성들이 처음엔 경계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말문을 튼 뒤엔 점점 편안하게 속내를 터놓는다”며 “조사관이기 이전에 같은 여성으로서 슬픔을 공감해주니 마음을 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탈북여성이 자신이 겪은 충격적인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그들이 하루빨리 과거의 아픈 상처를 치유받고 이 땅에서 밝고 희망찬 삶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아픈 사연을 지닌 탈북민들을 대해야 하는 만큼 이들은 조사관 역할과 탈북민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상담사 역할도 동시에 해야 한다. 하지만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탈북 여성을 달래주고 위로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한 조사관은 “끔찍한 이야기들을 계속 듣다 보면 조사관 자신도 탈북민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며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록센터는 정기적으로 조사관들이 심리 치료를 받도록 할 예정이다.
기록센터는 국내 입국 탈북민의 약 80%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인권 조사관 절대 다수를 여성으로 충원했다. 기록센터에서 만난 조사관 5명은 모두 정부가 임명한 북한 인권 조사의 첫 기록자로 선발된 사실에 크게 고무돼 있었다. 북한이탈주민 관련 업무의 특성상 조사관들의 얼굴과 이름은 비밀이어서 실명을 공개하지 못한다.
○ 북한인권 실태 기록해 인권침해자 압박
이들이 조사한 북한인권 실태 기록은 기록센터에 축적된 뒤 데이터베이스(DB)로 옮겨진다. 기록센터는 DB를 활용해 북한인권 실태를 분석하고, 북한인권 실태 정례보고서 및 사례보고서 발간, 인권 침해 관련 인명기록카드 작성에 나설 예정이다. 축적된 자료는 북한인권법에 따라 출범한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로 3개월마다 한 번씩 이관된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탈북자 관련 업무를 10년 이상 해온 C 조사관은 “우리 민족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13건이나 등재시킨 기록의 민족”이라며 “그런 조상을 가진 우리가 북한 동포가 겪은 인권침해 실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두현 기록센터장은 “센터가 추구하는 중요한 목적이 북한 주민에게 희망을 주고 존엄성을 찾아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조사 내용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축적된 자료들을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를 대내외에 적극 알려 인권침해 가담자들을 위축시키는 방안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인권법에 따라 당초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북한인권재단이 함께 출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본격 활동에 나선 기록센터와는 달리 북한인권재단은 북한인권법 제정 100일이 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서 센터장은 “비록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지연되고 있지만 기록센터 차원에서는 북한인권법의 취지를 이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