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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학칙개정 ‘미적’… 조기 취업생, 업무-수업 병행 비명

입력 | 2016-12-26 03:00:00

‘취업자 학점 인정’ 놓고 청탁금지법 우려가 현실로




 졸업을 앞둔 대학생 손모 씨(24)는 3학점짜리 전공과목 하나를 남겨두고 올해 10월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손 씨는 담당 교수를 찾아가 “수업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담당 교수는 “민감한 시기라 문제 될 사항은 안 만드는 게 좋겠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손 씨는 결국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수업에 나갔다. 퇴근 뒤엔 밤새 리포트까지 작성했다. 손 씨는 “예전엔 조기 취업생을 배려하는 분위기였다고 들었는데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교수님들이 더욱 엄격해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대학가에도 엄격히 적용되면서 졸업 예정자 신분으로 조기 취업한 학생들의 고충이 늘고 있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학생이 취업증명서를 학교에 제출해도 교수가 이들의 편의를 봐줄 경우 부정 청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손 씨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 각 대학에 ‘미출석 취업자 학점 부여’에 대한 학사운영 지침을 내려보냈다. 이에 따라 중앙대와 서강대, 한양대 등 몇몇 대학은 학칙 개정을 마쳤다. 하지만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일부 대학은 여전히 교수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교육부의 지침은 말 그대로 ‘지침’이기 때문에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학교별로 학칙이 다르다 보니 학생들은 혼란스럽다. 한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엔 ‘입사 오리엔테이션(OT) 날과 학교 기말시험 날이 겹쳤는데 교수님이 청탁금지법 때문에 그런지 봐주질 않는다’는 하소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세 과목을 남겨두고 올해 10월 취업한 대학생 이모 씨(24)는 “우리 학교는 교수 재량에 따르다 보니 어떤 과목은 과제로 대체하고 어떤 과목은 무조건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등 제각각이었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학칙 개정을 하지 않은 대학들은 이에 대해 “‘조기 취업생을 배려하는 것이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교육부 지침을 교수들에게 충분히 공지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교수들 입장은 다르다. 연세대 경영대의 한 교수는 “관련 내용을 메일로 공지받고 있고 윤리위원회에 궁금한 점을 문의할 수도 있다곤 하던데 아무래도 조심하게 된다”고 전했다. 학칙 개정을 마친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는 “취업 준비로 인해 학업이 부실해지거나 강의 분위기가 저해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생기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학내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청탁금지법 시행 석 달째에 접어들며 학내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 카네이션도 주면 안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뒤 학생들이 편히 찾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신방과 김모 교수는 “요샌 문제의 소지 자체를 안 만들려고 종강파티도 안 한다”며 “수업 끝나고 사제 간에 맥주 한잔하며 얘기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조차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의 한 교수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논문심사 과정에서 거마비나 사례금 등이 오고가지 않게 된 점은 긍정적인 변화지만 예전보다 학내 분위기가 다소 경직된 점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