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노예’ 北해외노동자]<4> 중동지역 극과 극 생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카타르 도하 인근 아파트 저층부 골조공사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인도 방글라데시 등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북한 노동자들은 외국인들과 교류 없이 따로 숙소를 지정해 살고 점심도 따로 먹는다. 중노동과 고립된 생활을 견디다 못해 몰래 도망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며칠 만에 붙잡혀 강제 북송된다. 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 “건설사 사장 3년 하면 100만 달러 챙겨”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는 북한 건설사 사장, 당 간부, 국가안전보위부 간부가 삼각 편대로 관리·감독한다. 북한 당국이 건설사 사장의 빈번한 자금 횡령을 막기 위해 감시 차원에서 당과 보위부 간부를 딸려 보내는 것이다. 셋 다 소속은 다르지만 노동자의 피를 빨아 배를 채우려는 데엔 한통속이다.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김정은은 올해 해외 공사 현장에 ‘노동자 임금을 떼먹지 말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쿠웨이트에 파견됐다가 귀국하던 한 노동자가 올해 1월 중간 기착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도망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베이징에서 붙잡혀 북송된 이 노동자는 “간부들이 하도 임금을 떼먹어 화가 나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노동자 임금을 착취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에 바칠 충성 자금 목표액을 채울 수 없어 김정은의 특별 지시도 무용지물이 됐다.
간부들은 ‘벼룩의 간’까지도 빼먹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악랄하다. 월급 150∼200달러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보직을 대가로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아 챙긴다. 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데다 뙤약볕이 아닌 실내에서 작업해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밀주 제조책이 되려면 간부에게 3000달러를 뇌물로 바치기로 약속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유일한 휴일인 금요일에 외출해도 고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간부들은 도하의 유명 호텔 나이트클럽에도 자주 드나든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 속에서 1인분에 80리얄(약 2만7000원)이나 하는 삼겹살을 매주 한 번씩 먹으러 온다고 한다. 북한 간부가 자주 찾는 한국식당 관계자는 “대부분 퉁퉁하게 살이 붙어 있고 말끔한 셔츠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와 한눈에 간부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숟가락 삼켜 자살 기도하는 노동자
북한에서 온갖 고난을 견뎌 온 군인들도 해외 건설 현장에 파견된 후에는 열악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민간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군인들로 구성된 남강2건설에서 일해 온 신모 씨는 지난해 5월 작업복 차림으로 도망갔다가 4일 만에 수색대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그는 중노동에 윗사람의 구타까지 이어지자 충동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군인 한모 씨는 지난해 2월 사막 황무지에 컨테이너 가건물로 지어진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망쳤지만 보위부 요원에게 며칠 만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
○ 중동 부호(富豪)에게 인기 높은 북한 화가
2000만원 벽화 그려주고 카타르 도하 한 부호의 대저택 3층 방 벽에 그려진 동양화풍 폭포 벽화. 카타르에서 청부업자로 일하는 북한 화가는 가로 8m, 세로 3m가량 되는 이 벽화를 그려주고 2000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북한 노동자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인 청부업은 화가다. 이들은 손재주가 좋아 대형 벽화를 좋아하는 카타르 부호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개 m²당 2500리얄(약 83만 원)가량을 받기에 벽화 크기에 따라 손쉽게 수백만∼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 1년 반 만에 30만 달러를 벌어 귀국했다는 ‘성공담’이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