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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섬’ 北노동자 폴란드 숙소

입력 | 2016-12-26 03:00:00

[‘21세기 노예’ 北해외노동자]주민들과 접촉 전혀 없어
3명 함께 외출 서로 감시… 유일한 오락은 카드놀이




 “저는 이런 거 가져가면 안 됩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신도시 빌라노프 건설 현장. 더듬더듬 폴란드어를 할 줄 아는 북한 노동자 A 씨는 관리사무소로 들어와 후다닥 달력 하나를 두고 갔다.

 이 달력은 며칠 전만 해도 사무소 벽에 붙어 있었다. A 씨가 달력 속 수영복 입은 여자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관리인이 짓궂은 농담을 섞어 가며 “그렇게 보지만 말고 가져가라”며 벽에서 떼어 건네줬다. A 씨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어두운 표정으로 반납한 것이다.

 올해 10월 말 북한 노동자들이 다 떠난 건설 현장에서 만난 관리인은 “그냥 싫으면 버려도 될 일인데 다시 와서 반납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가져갔다가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고 전했다. 외부에서 선정적인 달력을 가져온 것이 발각돼 자아비판과 생활총화를 한바탕 겪어야 했을 거라는 게 북한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의 추측이다.

 북한 노동자들이 일했던 공사 현장에서 만난 건설 인부들 가운데 북한 노동자들과 말을 섞어본 이들은 찾기 어려웠다. 근무 시간에 담배를 피우며 가족이나 개인 이야기를 물어봐도 묵묵부답이었다고 했다. 그들이 어디서 점심 식사를 했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폴란드 건설 현장에서 건설 인부들은 대개 공장 내부에 있는 이른바 ‘함바’ 식당이나 외부의 케이터링 업체가 가져오는 점심 식사를 삼삼오오 모여 먹는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다 같이 공사 현장 구석에 세워져 있는 컨테이너로 향했다. 한 폴란드 노동자는 “점심시간이 되면 어디에선가 별도로 점심 식사를 해서 가져왔다. 집에 점심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철저히 고립된 생활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이어졌다. 북한 노동자들이 함께 산 숙소는 단독주택인데 43개 주택이 한 단지처럼 모여 살아 이웃들과 접촉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주민 누구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한 여성 주민은 “주중에는 집 밖에 나오는 경우가 없고, 그나마 주말에 체육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혼자 다니지 않고 여럿이 몰려다녀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외출은 꼭 3명 이상이 함께 했다. 혹시 외부에서 누구를 접촉하지 않을까 서로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슈퍼마켓도 숙소 근처 한 곳만 이용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부터 휴대전화도 모두 빼앗긴 북한 노동자들은 그나마 숙소에서 카드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네덜란드 레이던대 보고서는 전했다.

바르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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