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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놀이터로 전락한 대한민국 문화행정

입력 | 2016-12-26 03:00:00

[2016 문화계 오樂가樂]―문화체육관광부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의 핵심사업이었던 문화창조융합벨트는 2019년까지 5년간 7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열린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을 마친 뒤 환하게 웃고 있다(첫번째 사진). 지난해 10월 27일 16개 대기업으로부터 486억 원을 모금해 설립된 미르재단의 현판. 동아일보DB

《 비선 실세들의 놀이터, 예산 빼먹는 ‘빨대’를 꽂기 가장 쉬운 부처, 부당한 윗선의 지시를 군말 없이 수행한 뒤 책임은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는 ‘영혼 없는 공무원’…. 2016년은 문화체육관광부 출범 이래 가장 곤혹스러운 비판이 제기된 한 해였다. 최순실 차은택 등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들의 이권 개입과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 무대가 문체부였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의혹에 휩싸인 문체부 사업은 문화창조융합벨트, 국가브랜드 선정, 문화융성, 늘품체조, 미르재단 사업 등 무려 20여 가지다. 》
 
○ 도화선 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문체부는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사태의 도화선이 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허가를 내준 주무 부처였다. 지난해 10월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이 윗선의 지시를 받아 청와대에서 열린 재단 설립 회의에 참석해 ‘10월 27일 미르재단 현판식에 맞춰 반드시 설립 허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문체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로부터 미르재단 설립 허가 서류를 제출받은 지 하루 만에 허가를 내줬다.

 9월 국정감사에서는 문체부 국감 사상 처음으로 7급 주무관이 증인으로 단상에 섰다. 장관부터 실장, 국장, 과장까지 전부 미르재단 허가에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하는 바람에 말단 직원이 책임을 뒤집어쓴 것이다. 그야말로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 비선 실세의 놀이터 문화창조융합본부 폐지

 문체부가 비선 실세들의 놀이터가 된 데에는 최순실의 ‘사업 파트너’ 격인 차은택의 역할이 컸다. 차은택은 최순실에게 자신의 은사인 김종덕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를 문체부 장관으로,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영문학부 교수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으로, 광고계 선배인 송성각 씨를 한국콘텐츠진흥원장으로 추천했다. 결국 차은택은 ‘교문수석-장관-콘진원장’으로 이어지는 인맥을 통해 국가의 문화정책을 움직였다. 이들이 주도한 국가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선정 사업은 26억 원의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또한 차은택이 초대 단장을 맡았던 문화창조융합본부는 내년 3월에 폐지될 예정이다. 국회에서 관련 예산도 780억 원이나 대거 삭감됐다.

○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논란

 청와대가 이념 성향에 따라 예술인을 분류한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문체부에 내려보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앞서 복수의 문체부 전·현직 공무원은 본보에 “2014년 중반부터 청와대가 문화계 인사들을 이념 성향으로 분류한 명단을 문체부 예술국에 내려보내 좌파 인사에 대한 지원을 못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리스트에 포함된 1만 명 가까운 예술인들은 반발했고 12일 문화예술계 12개 단체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9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고발했다.

○ 문체부 조직 축소될까

 문체부는 문화, 체육, 관광, 해외 국정홍보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비선 실세의 농단으로 만신창이가 된 문체부 조직이 차기 정부에서는 대거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9월 새로 취임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최순실 차은택 관련 문제 사업은 과감히 폐지하고, 관련 직원은 인사 조치하겠다”며 문체부 자체 개혁 작업에 나서고 있다. 최근 정관주 1차관이 사의를 표명했고, 윤태용 문화콘텐츠산업실장과 원용기 종무실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현재 1급 간부 7명 중 4명의 자리(문화예술정책실장, 문화콘텐츠산업실장, 종무실장, 국립중앙도서관장)가 공석이라 대대적인 인사가 뒤따를 예정이다.
 
김정은 kimje@donga.com·전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