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승정원일기’엔 왕들의 기침을 다스리기 위해 쓰인 다양한 처방이 기록돼 있는데 그중 가장 여러 차례 언급된 단어는 ‘오과다(五果茶)’이다. 오과다는 그 명칭처럼 호두, 은행, 대추, 밤, 생강 등 다섯 가지를 달여 식힌 후 필요할 때 꺼내 마시는 약차다. 먹기도 간편하고 장기간 복용해도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식음료에 가깝다.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가 가장 아끼고 신임한 어의 강명길의 저작 ‘제중신편’에 그 처방과 복용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왕과 왕비에게 실제로 썼던 궁중비방을 직접 정리, 편집한 실전 비방이라 신뢰도가 아주 높은 의서다.
오과다는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만성 기침을 다스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처방됐다. 그는 남편이 뒤주에 갇혀 죽은 뒤 정적들의 눈을 피해 아들을 왕으로 등극시키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한평생 애간장을 태우며 눈물로 지새우느라 그의 폐는 단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한의학은 폐의 기능을 마음의 상태와 연관짓는다. 슬픔이나 우울함은 폐를 손상시킨다고 진단한다. 한의학의 고전 ‘본경소증’엔 “울고 슬퍼하면 폐에 사기(邪氣)가 몰려가고 눈물을 흘림으로써 몸이 허약해진다”고 쓰여 있다.
기침은 감기에 걸렸을 때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다. 진료실을 찾는 기침 환자를 실제 원인별로 나눠 보면 감기보다 코와 가래가 목으로 넘어가는 후비루(상기도기침) 증후군이나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경우도 종종 있다. 후비루 증후군에 걸리면 목에 이물감이 생기면서 캑캑거리는 불쾌감과 함께 목 뒤로 무엇인가 넘어간다고 호소한다. 이럴 때는 오과다에 수세미를 조금 넣어 달이면 도움이 된다.
오과다를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호두 10알, 은행 15알, 마른대추 7알, 생밤 7알, 동전 크기 생강 7쪽, 큰 배 한 개를 구한다. 생강을 제외한 재료들을 얇게 썰어 2L 정도의 물에 넣어 3시간 정도 약한 불에 함께 끓인다. 물이 줄면 보충한다. 남은 물의 양이 1.5L 정도가 되면 식힌 후 냉장 보관한다. 먹을 때 꿀을 한 티스푼 넣으면 맛도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