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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기자의 스포츠 한 장면]작심삼일, 새해엔 ‘이미지 세뇌’로 넘자

입력 | 2016-12-2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이종석 기자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주면 새해다. 이맘때면 ‘이것만은 꼭!’ ‘이번만은 반드시!’ 하는 새해 작심(作心) 아이템 한두 가지 정도 마음에 품었을 때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닭띠 해라니 새벽같이 일어나 뭐라도 한 번 해보겠다는 결심자들이 꽤 있지 싶다. 작심 아이템은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루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같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처럼 쉽게 되나.

 기필코 골프 백돌이(100타 이상을 치는 초짜 골퍼) 탈출! 뱃살 빼기! 내친김에 복근까지? 서브스리(마라톤 풀코스 3시간 내 완주) 체력 만들기, 탁구 교실 상급반 진출…. 마음먹은 아이템이 이처럼 몸을 쓰는 것들이라면, 작심삼일에 무너지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혹 도움이 될까 싶어 몇 장면 소개한다.

 한 축구 선수가 아무도 없는 그라운드에서 혼자 공을 몰고 골문 앞까지 달려가 슛을 날린다. 골키퍼 없는 골문이니 당연히 슛 골인. 이 다음이 가관이다. 이번엔 텅 빈 관중석 앞으로 달려가 두 팔 치켜들고 소리까지 지른다. 골 세리머니를 한 것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비쳤을 수도 있다. 이 선수는 경기 날이 다가오면 이런 짓을 종종 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렇게 설명했다. “경기에서 골을 넣고 좋아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자꾸 그려봐야 한다. 그러면 실제 경기에서도 도움이 된다.” 골을 넣고 이기는, 그러니까 목표를 이룬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자주 떠올리면 실제 경기를 할 때 도움이 되더라는 말이다.

 이 얘기를 그동안 주변에 몇 번 했다. 그런데 선뜻 공감이 안 된다는 사람이 꽤 있었다. 빈 골문에 골 넣고 혼자서 좋아하는 게 경기력 향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한 선수가 디에고 마라도나였다는 것까지 얘기하면 그때는 ‘진짜 그런가?’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이것도 뭐 100% 공감을 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선수도 아니고 ‘축구 신동’ 마라도나가 한 얘기라고 하니 대놓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기는 뭣해서 그랬을 것으로 짐작한다.

 레인 비츨리라는 호주 출신의 여성 서핑 선수가 있었다. 서핑은 바다에서 열리는 종목이지만 비츨리는 대회 때 해변을 있는 힘껏 달리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고 한다. 비츨리가 달려가 멈춘 곳은 시상대였다. 대회에서 1등을 한 자신이 시상대에 오르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시상대 앞까지 달린 것이다. 잠을 자기 전에도 침대에 누워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선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고 한다. 2008년에 은퇴한 비츨리는 현역 시절 세계선수권에서 7번이나 우승하며 ‘파도의 여신’으로 불렸고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목표를 달성한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계속 그리는, 일종의 ‘이미지 세뇌’가 비츨리에게 도움이 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럴 수 있다. 마라도나는 신동이고, 비츨리는 여신이라며? 그런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효과를 봤다고, 그걸 지금 아마추어들한테 방법이라고 소개하는 거냐? 이렇게 따지듯 물은 사람이 주변에 실제로 있었다. 경기 전에 자신의 골 세리머니 모습을 떠올리는 축구 선수들은 국내에도 꽤 있다. 야구 선수 중에는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천천히 도는 TV 중계 화면을 반복적으로 돌려 보는 선수도 있다. 소속 팀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 장면을 선수별로 따로 편집해 뒀다가 경기 전에 각자 보게 하는 감독도 있다.

 이미지 세뇌를 한다고 100%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여러 선수와 감독이 이런 방법을 쓴다는 건 어쨌든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농구 선수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한 달간 푹 쉬는 휴가를 줬다. 다른 한 그룹은 같은 기간 쉬면서 실제 훈련은 하지 않는 대신에 매일 1시간씩 슛을 성공시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한 달 뒤 실제 슈팅 성공률에서 이미지 트레이닝 그룹이 더 높게 나왔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체력 소모가 거의 없다. 장소의 제약도 없는 데다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특히 몸 쓰는 트레이닝을 웬만큼 했는데도 기대만큼의 성과가 없을 때, 그래서 ‘에라∼이’ 하고 놓아버리고 싶을 때 좀 더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단, 실제 몸을 쓰는 트레이닝과 병행해야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 이미지 세뇌만으로 된다는 건 아니다. 이미지 트레이닝 그룹도 한 달간 매일 한 시간씩 실제 슈팅 연습을 한 그룹에는 못 미쳤다. 한 번들 시도해 보시기를…. 밑져야 본전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