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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전승민]대한민국과 우주 도전의 자격

입력 | 2016-12-26 03:00:00


2015년 12월 전남 고흥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된 한국형 발사체 추력 7t급 엔진의 연소시험 장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제공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2014년 12월 국회는 ‘달 탐사선 개발’을 위해 책정했던 예산 41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당시 한국은 독자적으로 ‘한국형발사체(KSLV-2)’와 ‘달 탐사선’ 개발을 추진 중이었다. 예산 삭감으로 달 탐사선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2015년 한 해 동안 관련 예산을 10원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달 탐사 연구진들은 2015년 내내 추가적으로 연구비를 별도로 마련해야 했다. 연구진은 결국 큰 연구는 뒤로 미뤘다. 작은 연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기관주요사업비’를 나누어 받는 식으로 알음알음 한 해를 견뎌야 했다.

 당시 예산이 삭감된 까닭은 이렇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관련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제출 기한이 늦어 뒤늦게 추가로 넘어가게 됐다. 이를 두고 일부 야당 의원이 ‘쪽지 예산을 편성해 날치기로 예산을 따 내려고 한다’며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적어도 십몇 년 앞을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비용을 진행해야 할 우주개발 사업비를 놓고 ‘날치기를 허용하면 안 된다’며 국회에서 벌인 체면 싸움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비슷한 일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미래부는 22일 제11차 국가우주위원회를 열고 당초 내년 12월로 예정돼 있던 KSLV-2 시험발사를 2018년 10월로 10개월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래부는 “발사 실패 가능성과 사고 위험성 등을 고려해 충분한 시험을 거칠 수 있도록 발사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련 연구자들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 항우연 관계자는 “처음에는 2025년 달 탐사를 목표로 2018년 12월 시험발사체를 발사하고, 2020년 첫 한국형 발사체를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2020년 달에 태극기를 꽂겠다’는 대통령 공약사항 때문에 일정을 조정하라는 지시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면밀한 논의 끝에 결정한 국가우주개발 계획이 정치권 요청에 틀어졌던 것이다.

 연구진은 정부 요구에 어떻게든 맞춰 보려고 노력했지만 시급한 연구개발 추진은 결국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2014년 10월 75t급 액체엔진 연소기에서 연소 불안정 현상이 발견됐다. 연소 시간 70초를 목표로 한 첫 엔진 연소시험도 2015년 7월에서 올해 4월로 9개월가량 지연돼 실시됐다. 시험용 발사체 1단의 추진제 탱크 제작 과정에서도 설계 및 장비 설치 지연, 제작 불량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정을 본래대로 회복시켜 달라’는 주장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10월 국정감사에서 “사업 진행 기관인 항우연이 일정 내에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미래부에 제출했지만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단 이뿐일까. 국내 장기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정치권 요구에 이리저리 휘둘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였던 ‘나로호’는 세 차례에 걸친 도전 끝에 결국 하늘 문을 여는 데 성공했지만 앞서 두 차례나 실패가 이어지면서 ‘왜 이렇게 발사 일정을 서두르느냐’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임기 안에 발사를 강행했다는 의혹의 눈길도 많았다.

 과학기술은 언제쯤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13년 12월 4일 국회가 체면 때문에 달 탐사선 예산을 삭감해 버린 바로 그날 일본은 외계 소행성을 찾아갔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올 새 우주 탐사선 ‘하야부사2’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진정 우주개발 사업에 투자할 자격을 갖췄는지 궁금하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