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얼마 전 김정은 북한 정권의 돈줄로 혹사당하는 해외 주재 북한 노동자의 인권 유린 실태를 취재하러 북한인 2600여 명이 일한다는 카타르에 갔을 때 ‘분단된 한민족의 역설’을 절감했다. 그동안 탈북자는 여럿 만났지만 대한민국에 핵을 겨누고 위협해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을 눈앞에 두고는 사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 북한 노동자가 일한다는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앞에서 그렇게 서성거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잠시 쉬려는 듯 공사 현장 밖으로 나온 북한 노동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기자와 비슷한 30대 초반 남성으로 보이지만 키가 160cm가 채 안 됐다. 깡말랐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북조선에서 오셨습니까. 저는 남조선에서 왔습니다. 얼굴이나 보려고요.”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일부러 북한식 표현을 썼다. 잠시 흠칫하던 그는 “혼자 왔습니까?”라고 되묻더니 공사장 뒤편 어둠 속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김정은 정권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큼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던 건 인민군으로서 남한에 총을 겨눴을 그가 너무나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기자에게 ‘독신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결혼을 일찍 해 아이가 있다면서 독신인 기자가 부럽다고 농담을 건넸다. 한국의 내 또래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동무들이 찾겠다’며 10분 남짓한 대화를 마친 그는 “싫어하지 말라. 남조선 사람 만나는 건 절대 금지지만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앞으로 내가 정문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종종 보자”며 돌아갔다. 생애 처음 만난 남한 사람이었을 기자에게 그 역시 동포라는 감정을 느꼈던 모양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른 북한 노동자들도 동포애로 기자를 대해줬다. 공사 현장 앞에서 서성이는 기자에게 “꼬레아?”라며 먼저 말을 걸더니 “안녕하십니까!”라고 목소리 높여 반겨주는 이도 있었다. 유학생이라고 신분을 감춘 기자에게 “통일 되면 공부한 거 우리 대학생들에게 배워주라(가르쳐 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집단폭행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카타르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2600여 명은 임기 3년 동안 월급의 80%를 북한 당국에 떼이고 150∼200달러만 받으며 주 6일 하루 14시간 사막에서 혹사당한다. 처지를 비관해 숟가락을 삼키거나 고층 빌딩에서 투신해 자살할 만큼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런 카타르에서의 삶이 북한에서의 그것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사실이다. 집권 5주년을 맞은 김정은이 입에 달고 산다는 ‘인민 사랑’의 참혹한 실체다.
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