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이후 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문화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각들은 곳곳에 남아있다. 난 은행이나 동사무소처럼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곳에 가기를 늘 두려워했다. 내 신분증이 결혼이민자 신분증에서 영주권 신분증으로 바뀌기 전까지 말이다. 은행이나 동사무소에서 “네, 다음 고객 오셔서 신분증 보여 주세요”라는 말에 신분증을 내밀 때, 직원들은 날 안쓰러워하거나 타향에서 고생하는 사람 대하듯 했다. 몇몇 사람은 내 손을 꼭 잡고는 “힘드시겠다. 남편과 나이 차이가 어떻게 돼요?”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기관에 갈 때마다 이마에 ‘우리 남편은 나이가 안 많다. 그리고 난 나름대로 잘살고 있으니 질문하지 마시라’고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는 한국에서 결혼이민자로 살며 겪는 작은 불편에 불과하다. 더 큰 불편은 정부의 일자리 지원과 교육에 있다. 2000년 이후에 들어온 결혼이민자들 대부분은 더 이상 한국 문화나 한국어 교육이 없어도 언어에 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이민자에 대한 교육은 언어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한국 정부가 신경 써야 할 중요한 과제는 결혼이민자를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와 자녀 지원 문제이다.
서울시를 비롯해 몇 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결혼이민자를 위한 취업박람회를 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얻는 효과는 박람회를 여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해 적을 것이다. 박람회에 참여하는 기업이나 지자체는 참석했다는 자체에 의의를 두고 보도자료 배포 및 홍보가 목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고용노동부에는 ‘여성취업성공패키지’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이민여성들이 차별 없이 정부 지원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는 조건으로 실행된다. 안타깝게도 이 역시 결혼이민자들에겐 불리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한국에 오래 있고 오래 살았다고 해도 한국어로 한국인들과 똑같이 직업훈련 받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결혼이민자들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도대체 해결책이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실질적인 연구 및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결혼이민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관심 있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문화가족 구성원에게 질문을 던져 보면 해답은 아니더라도 해답에 가까운 답이 나오지 않을까. 2000년대 초반부터 급속도로 증가해 온 결혼이민자 수는 최근 들어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다. 이는 정책 실패와 함께 사회적으로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앞으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 및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우리 다문화가족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응원하지는 않더라도 불편하게 보지 않는 인식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제 한국에서 평생 살아갈 사람들이다. 더 이상 잠깐 살다 갈 외국인처럼 여기지 말고 한국인과 똑같이 한국에 꼭 필요한 인재 또는 미래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다문화사회다.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