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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장명희]작지만 세련되게… 젊은 30대를 위한 한옥

입력 | 2016-12-27 03:00:00


최근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편리함과 현대적 감각의 한옥으로 다시 태어난 서울 북촌의 대용 씨 한옥.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서른아홉 살 대용 씨의 한옥은 서울 북촌에 있다. 대지 약 99m²에 건평은 그 절반. 10여 년 전부터 시행된 서울시 한옥활성화 정책 이전 북촌의 도시한옥들이 대개 그랬듯이 여기저기 늘이고 덧대어졌던 집은 최근 대수선을 거치면서 방 두 개, 대청, 부엌, 욕실에 넓은 지하공간과 붙박이장을 갖추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거듭났다.

 대용 씨가 낡고 불편했던 한옥을 고치면서 초점을 맞추었던 부분은 한옥의 조형미를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감각에 맞게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있는 단아한 ‘ㄷ’자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중앙이 대청, 왼쪽 날개는 안방과 부엌, 오른쪽 날개는 방과 욕실 겸 화장실이다.

 부엌 바닥은 안방보다 단차를 크게 낮추었다. 필요할 때 부엌에서 마당으로 조립식 식탁을 설치하면 의자 놓고 둘러앉기에 꼭 맞는 높이다.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사람과 마당의 친구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음식 만드는 모습도 보며 함께 즐길 수 있다. 친구를 좋아하고 그들과 피자와 와인을 나누는 시간을 좋아하는 대용 씨가 각별히 신경을 쓴 결과물이다. 부엌이 낮아진 만큼 상부에 다락을 설치했다. 전통 한옥에서도 부엌이 방보다 낮고 부엌 상부에 다락을 설치하니, 전통의 형식을 가장 현대적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고나 할까.

 화장실 겸 샤워실에는 외측 벽면에 통유리를 넣고 그 바깥 담장을 간결하지만 예쁜 꽃담으로 장식한 것이 눈길을 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 벽체로 꽉 막힌 공간보다는 시야를 약간이라도 틔우고 꽃담을 바라보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욕조와 샤워 부스를 분리해 설치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했고, 결국 욕조를 포기했다. 욕조를 넣을 수 없을 줄 알았다면 통유리벽을 설치하기보다는 벽에 창을 가로로 길게 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앞으로 한옥을 또 짓게 된다면 못다 한 욕조의 꿈을 이루겠단다.

 지하실은 대용 씨 한옥에서 또 다른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 지하 공간은 음악 감상이나 작은 모임을 하기에 더없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흔히 지하공간은 습기 차고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냄새가 나기도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벽체를 이중으로 설치한 덕분이다.  작지만 세련되게 현대생활을 담는 한옥으로 재탄생한 대용 씨의 한옥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대용 씨의 존재다. 흔히 “집은 주인이 완성한다”고 한다. 전문가가 집을 지어도 주인의 삶의 방식에 따라 그 표정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풀고 싶고, 독립된 공간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을 누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용 씨는 자신이 일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취향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실현해 나갔다. 실력 있는 전문가를 찾고, 자신의 욕구를 전문가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함께 논의하고 합리적으로 조율한 결과를 설계에 담아 집을 지었다.

 집을 고치기 위해 서울시 한옥지원금과 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으니 자금이 넉넉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자재와 시공의 품질을 낮추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유지 관리에 시간과 비용이 더 들게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얼마나 싸게 짓는가에 관심이 맞추어져 있는 앞 세대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차이다.

 집이 작으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결정하기가 쉬웠다고 겸손해하지만, 작은 공간일수록 욕심을 조절하며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대용 씨가 보기에 요즘 짓는 한옥들은 획일적이다. 그는 그 원인을 디자인 개념의 부족에서 찾는다. 자신이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찾기보다는 남이 한 것을 따라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옥이 현대생활을 담되 아름답게 진화하지 않으면 젊은층에게 다갈 수 없으며 미래 또한 없다고 단언한다. 대용 씨가 한옥을 고친 과정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한옥이 한국인의 주거로서 지속 가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끝―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