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이 말하는 IOC선수위원 4개월

열네 살이던 1996년 국가대표가 된 후 20년 가까이 선수와 코치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요즘 양복을 입을 때가 더 많다. 유 위원은 “IOC 선수위원을 꿈꾸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kwangshin00@donga.com
지난주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34)은 자리에 앉자마자 명함 한 장을 건넸다.
IOC Member Seung Min Ryu(IOC 위원 유승민).
명함처럼 IOC는 선수위원과 일반위원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IOC 위원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는 똑같다. 선수위원도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 정식 종목 채택 등 IOC의 주요 의사 결정에 투표권을 행사하고 분과 활동도 한다. 14명의 선수위원을 포함해 IOC 위원은 전 세계를 통틀어 98명밖에 없다. 유 위원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이던 올해 8월 23명이 출마해 4명을 뽑는 선수위원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2위로 당선됐다. 25일간의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발로 뛰며 선수들을 만난 결과였다. 요즘 유 위원은 선수와 코치로 활동할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발로 뛰는 건 자신 있어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유 위원의 하루 일과는 IOC에서 날아오는 e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종종 IOC 분과위원회의 화상 회의에도 참가한다. 오후나 저녁에는 모임이나 행사에 다닌다. 휴대전화에 적어 놓은 스케줄 표를 보니 하루 평균 3, 4건의 약속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한국의 IOC 위원은 유 위원과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하지만 사실상 활동하는 것은 유 위원뿐이다. 찾는 곳도 많고, 오라는 곳도 많다. 최근에도 회의 참석 등을 위해 카타르와 스위스, 베트남 등을 다녀왔다. 전국체육대회가 열린 충남 아산과 천안, 그리고 트라이애슬론월드컵대회가 열린 경남 통영에도 갔다 왔다.
16∼18일 강릉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을 찾은 전·현직 여름 종목 스타 선수들. 이옥성(복싱) 김지훈(체조) 유승민(IOC 위원·윗줄 왼쪽부터) 오혜리(태권도) 윤진희(역도) 정지헌(레슬링) 김정주(복싱) 남유선(수영·가운뎃줄 왼쪽부터) 한순철(아랫줄).
○ 스트레스 많지만 보람
IOC 위원이 된 뒤 달라진 점을 물었더니 그는 “체육복이 익숙한데 양복을 입어야 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러고는 “비행기 일등석이라는 걸 처음 타 봤다”고 했다. IOC 위원은 따로 보수를 받진 않지만 IOC가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할 때는 비행기 일등석과 오성급 호텔을 제공받는다. 그는 “하지만 흰머리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희끗희끗 흰머리가 눈에 띄었다.
그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조심스럽다. 내가 하는 말이 한국이나 IOC에 대한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털어놨다. 선수 시절 외국 리그에서 오래 뛴 그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전문 용어가 나올 때나 회의 때 사용하는 영어에는 종종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화상 회의가 있는 날엔 영어 잘하는 후배들과 함께 사전 연습을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내년에는 영어권 국가에 유학을 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