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정황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포착해 수사 중이라고 동아일보가 28일 보도했다. 당초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주도로 대통령정무수석실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 씨가 먼저 박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의 필요성을 주장해 박 대통령이 비서실에 구체화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에는 국가정보원이 동원됐다고 한다. 셀프개혁을 다짐했던 국정원이 또 ‘민간인 사찰’을 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올 10월 언론 보도로 공개된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시국선언 754명,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선언 6517명,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 선언 1608명 등 문화예술계 9473명의 이름이 열거돼 있다. 최 씨가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에게 갈 예산을 차단해 자신의 사업에 투입하려는 의도로 일을 꾸몄지만 김 전 실장이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까지 대거 포함시켰다고 한다. 실제로 동아연극상 수상자인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는 2015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사업 희곡 분야에서 1위로 뽑히고도 최종 지원작에서 배제됐다. 대선 때 고교 동기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돕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작성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유신독재 시대로 돌리는 시대착오적 행태다. 문화예술의 힘과 가치는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인 표현에서 나온다. 11월 문인협회 작가회의 등 문학 5개 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뜨리는 큰 사건”이라고 보수와 진보 진영에 상관없이 한목소리를 낸 것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